세계사1839년 – 1901년30건

동아시아의 개항과 근대화

아편 전쟁에서 신축 조약까지 — 서양의 함포 앞에 문을 연 청·일본·조선이 저마다 개혁에 나섰다가 서로 다른 길로 갈라진 60년

조선이라는 물고기를 낚으려는 일본과 청, 그리고 지켜보는 러시아 — 조르주 비고의 풍자화, 『도바에』 1887년
조선이라는 물고기를 낚으려는 일본과 청, 그리고 지켜보는 러시아 — 조르주 비고의 풍자화, 『도바에』 1887년

Georges Ferdinand Bigot (1860-1927) · Public domain · 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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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비교

구분청일본조선
개항의 계기아편 전쟁 1840–1842페리 내항 1853운요호 사건 1875
첫 개항 조약난징 조약 1842 (5개 항구)미일 화친 조약 1854강화도 조약 1876
불평등 조항영사 재판권·최혜국 대우 (1843)영사 재판권·협정 관세 (1858)치외 법권·무관세 (1876)
서양과의 충돌베이징 함락·원명원 소실 1860사쓰마·조슈의 포격전 1863–1864병인양요 1866·신미양요 1871
안에서의 저항태평천국 1851–1864 (멸만흥한)세이난 전쟁 1877 (사족 반란)동학 농민 운동 1894
개혁의 구호양무운동 — 중체서용메이지 유신 — 문명개화개화 정책 — 동도서기
개혁의 내용군수 공장·조선소·북양 함대폐번치현·징병령·지조 개정통리기무아문·별기군 1880–1881
배우러 간 사람들미국 유학생 1872이와쿠라 사절단 1871–1873수신사·조사 시찰단·영선사·보빙사
아래로부터의 개혁 요구변법자강 운동 → 무술정변 1898자유 민권 운동 1874–갑신정변 1884·독립 협회 1896–1898
위로부터의 제도 개혁광서신정 1901–폐번치현 1871 이후 메이지 정부갑오·을미개혁 1894–1895
헌법흠정 헌법 대강 1908대일본 제국 헌법 1889대한국 국제 1899
조공 질서의 해체청프 전쟁 → 베트남 종주권 잃음 1885타이완 출병 1874·류큐 처분 1879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 1882
청일 전쟁의 결과타이완 할양·배상금 2억 냥삼국 간섭으로 랴오둥 반환청과의 사대 관계 끝남 → 을미사변
불평등 조약의 행방신축 조약 1901 — 외국군 주둔치외 법권 철폐 1899·관세 자주권 1911을사늑약 1905 — 외교권 박탈

지도로 보는 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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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의 사건 30건

  1. 청이 아편 밀수를 단속하자 영국이 전쟁을 일으켜 이겼다. 난징 조약으로 청은 홍콩을 넘기고 다섯 항구를 열어, 동아시아 개항의 시작이 되었다.

  2. 1851년 – 1864년태평천국 운동

    홍슈취안이 이끈 농민군이 "멸만흥한"을 내걸고 난징을 수도로 태평천국을 세워 14년 동안 청에 맞섰다. 한인 관료의 향용과 서양 군대가 진압했다.

  3. 미국의 페리 제독이 군함을 이끌고 와 개항을 요구했다. 이듬해 에도 막부는 미일 화친 조약을 맺어 시모다·하코다테를 열고, 200여 년의 쇄국을 끝냈다.

  4. 애로호 사건을 구실로 영국·프랑스 연합군이 청을 쳐 베이징을 점령했다. 톈진·베이징 조약으로 청은 개항장을 늘렸고, 중재를 맡은 러시아는 연해주를 얻어 조선과 국경이 맞닿게 되었다.

  5. 에도 막부가 천황의 허락 없이 미국과 통상 조약을 맺었다. 영사 재판권을 주고 관세 자주권이 없는 불평등 조약이었고, 존왕양이 운동과 막부 타도로 이어졌다.

  6. 1861년 – 1895년양무운동

    태평천국을 진압한 한인 관료들이 "중체서용"을 내걸고 서양의 무기·기술을 들여와 군수 공장·조선소·근대 기업을 세웠다. 청프·청일 전쟁에 지며 한계가 드러났다.

  7. 천주교 박해를 구실로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점령했다. 양헌수가 정족산성에서 물리쳤고, 프랑스군은 외규장각 도서를 약탈해 물러났다.

  8. 에도 막부가 무너지고 일왕 중심의 새 정부가 서양식 근대화를 밀어붙였다.

  9. 제너럴셔먼호 사건을 따지러 온 미국 함대가 강화도를 공격했다. 광성보에서 어재연이 전사했고, 흥선대원군은 척화비를 세웠다.

  10. 메이지 정부가 번을 없애고 현을 두어 중앙 집권 국가를 세웠다. 이어 신분제 폐지·징병령·지조 개정·학제와 식산흥업으로 위로부터의 근대화를 밀어붙였다.

  11. 1871년 – 1873년이와쿠라 사절단

    메이지 정부의 지도자 절반이 1년 9개월 동안 미국과 유럽을 돌며 불평등 조약 개정을 타진하고 서양의 제도·산업을 살폈다.

  12. 1874년 – 1889년자유 민권 운동

    정부에서 물러난 이타가키 다이스케 등이 민선 의원 설립을 요구하며 시작한 국회 개설·헌법 제정 운동. 정부는 1890년 국회를 열겠다고 약속했다.

  13. 류큐 어민이 타이완 원주민에게 살해된 일을 구실로 일본이 타이완 남부에 군대를 보냈다. 메이지 정부의 첫 해외 출병이었다.

  14. 일본 군함 운요호가 강화도 초지진에 다가와 포격을 주고받고 영종도에 상륙해 약탈했다. 일본은 이를 구실로 강화도 조약을 강요했다.

  15. 1876년 음력 2월 3일(양력 2월 27일) 조선이 일본과 맺은 첫 근대 조약. 부산 등 세 항구를 열었고 불평등 조항이 담겼다.

  16. 특권을 잃은 사쓰마의 사족들이 사이고 다카모리를 앞세워 일으킨 마지막이자 가장 큰 사족 반란. 징병제 정부군이 진압했다.

  17. 일본이 청과 사쓰마에 함께 속해 있던 류큐 왕국을 없애고 오키나와현을 두었다. 청 중심 조공 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한 신호였다.

  18. 조선이 서양 나라와 처음 맺은 조약. 청의 주선으로 제물포에서 미국과 맺었고, 치외 법권과 최혜국 대우가 들어갔다.

  19. 1884년 – 1885년청프 전쟁

    베트남의 종주권을 두고 청과 프랑스가 싸웠다. 청은 베트남에 대한 종주권을 잃었고, 그사이 조선에서는 갑신정변이 일어났다.

  20. 김옥균 등 급진 개화파가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에서 정변을 일으켰다. 청군이 개입해 사흘 만에 끝났다.

  21.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근대 헌법을 반포하고 이듬해 제국 의회를 열었다. 천황이 주권을 가진 흠정 헌법이었다.

  22. 전봉준이 이끄는 농민군이 탐관오리와 외세에 맞서 일어났다. 청일 전쟁의 계기가 되었다.

  23. 1894년 – 1896년갑오개혁

    군국기무처를 세우고 신분제와 과거제를 없애는 등 정치·사회 전반을 고쳤다. 일본의 간섭 아래 김홍집 내각이 이끌었다.

  24. 일본이 영국과 새 조약을 맺어 영사 재판권(치외 법권)을 없앴다. 1911년에는 관세 자주권도 되찾아 불평등 조약 개정을 마쳤다.

  25. 1894년 – 1895년청일 전쟁

    조선을 두고 청과 일본이 싸웠다. 풍도·성환·평양·황해에서 이긴 일본이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청의 조선 종주권을 끊고 타이완을 얻었다.

  26. 청일 전쟁을 끝낸 조약으로 일본은 타이완과 거액의 배상금을 얻었으나, 러시아·독일·프랑스의 삼국 간섭으로 랴오둥반도를 돌려주었다. 이어 열강이 청의 영토를 앞다투어 조차했다.

  27. 1896년 – 1898년독립 협회

    서재필이 정부 관료·지식인과 함께 독립 협회를 만들었다. 독립문을 세우고 만민 공동회를 열어 자주 국권·자유 민권·자강 개혁을 외쳤다.

  28. 캉유웨이·량치차오가 광서제를 움직여 메이지 유신을 본보기로 입헌 군주제를 향한 개혁을 폈으나, 서태후의 무술정변으로 100여 일 만에 끝났다.

  29. "부청멸양"을 내건 의화단이 교회와 철도를 공격하고 베이징의 공사관을 에워쌌다. 8개국 연합군이 베이징을 점령했고, 청은 신축 조약으로 막대한 배상금을 물고 외국 군대의 주둔을 받아들였다.

  30. 대한제국이 9조의 국제(나라의 기본법)를 반포했다. 대한제국이 자주독립한 제국이며 황제가 무한한 군권을 가진 전제 정치의 나라임을 밝혔다.

주요 인물

  • 고종1852년 – 1919년

    조선 제26대 왕이자 대한제국 첫 황제

  • 리훙장1823년 – 1901년

    청의 북양 대신. 임오군란 뒤 조선 정책을 주도했고 이토 히로부미와 톈진 조약, 시모노세키 조약을 맺었다

  • 오쿠보 도시미치1830년 – 1878년

    사쓰마 출신으로 메이지 정부를 이끈 정치가. 폐번치현과 식산흥업을 밀었고, 정한론에 반대했다

  • 사이고 다카모리1828년 – 1877년

    사쓰마 출신의 메이지 유신 지도자. 정한론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물러났고, 세이난 전쟁을 일으켰다가 패해 죽었다

  • 이토 히로부미1841년 – 1909년

    일본의 첫 총리대신. 을사늑약을 강요하고 초대 한국 통감이 되었다. 하얼빈역에서 안중근에게 저격당했다

  • 쩡궈판1811년 – 1872년

    한인 관료. 향용인 상군을 길러 태평천국을 진압하고, 양무운동을 시작했다

  • 흥선대원군1820년 – 1898년

    고종의 아버지. 섭정으로 경복궁을 다시 짓고 통상 수교를 거부했다

  • 메이지 일왕1852년 – 1912년

    일본의 122대 왕(재위 1867–1912). 그의 이름 아래 막부가 무너지고 메이지 유신과 대일본 제국 헌법 반포가 이루어졌다

  • 신헌1810년 – 1884년

    강화도 조약과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을 맺은 조선의 대표

  • 서재필1864년 – 1951년

    갑신정변에 가담했다가 미국으로 망명했다. 돌아와 독립신문을 펴내고 독립협회를 이끌었다

  • 박영효1861년 – 1939년

    철종의 사위인 급진 개화파. 김옥균과 갑신정변을 일으켰고, 2차 갑오개혁 때 김홍집과 연립 내각을 이끌었다

  • 무쓰 무네미쓰1844년 – 1897년

    일본의 외무대신(1892–1896). 영국과의 조약 개정으로 치외 법권을 없앴고, 청일 전쟁과 시모노세키 조약을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