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분쟁1856년 10월 – 1860년 11월

제2차 아편 전쟁과 톈진·베이징 조약

다른 이름: 애로호 전쟁, 톈진 조약 (1858), 베이징 조약

애로호 사건을 구실로 영국·프랑스 연합군이 청을 쳐 베이징을 점령했다. 톈진·베이징 조약으로 청은 개항장을 늘렸고, 중재를 맡은 러시아는 연해주를 얻어 조선과 국경이 맞닿게 되었다.

영·프 연합군의 원명원 약탈 — 1860년 10월
영·프 연합군의 원명원 약탈 — 1860년 10월

Godefroy Durand · Public domain · 원본

난징 조약 뒤에도 무역이 생각만큼 늘지 않자 영국은 더 많은 이권을 노렸다. 1856년 청 관헌이 영국 국기를 단 애로호를 수색한 일을 구실로 영국이, 선교사 처형을 구실로 프랑스가 출병했다. 연합군은 광저우를 점령하고 북상해 1858년 톈진 조약을 맺었으나, 청이 비준을 미루자 1860년 베이징을 점령하고 원명원을 약탈해 불태웠다. 함풍제는 러허로 피란했다.

1860년 베이징 조약으로 청은 톈진을 더 열고 주룽반도 남쪽을 영국에 넘겼으며, 외국 공사의 베이징 주재, 크리스트교 포교의 자유, 외국인의 내지 여행을 인정했다. 중재를 맡은 러시아는 아이훈 조약(1858)으로 헤이룽강 북쪽을 얻은 데 이어, 베이징 조약으로 우수리강 동쪽 연해주를 차지하고 블라디보스토크를 세웠다.

이로써 러시아는 두만강 하류에서 조선과 국경을 맞대게 되었다. 청은 이듬해 외교를 맡는 총리각국사무아문을 두고 양무운동에 나섰다. 베이징 함락 소식은 조선에도 충격을 주어, 흥선 대원군이 서양 세력을 더욱 경계하는 배경이 되었다.

지도에서 보기

1856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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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영국 · 승전국
프랑스 · 승전국
청 · 패전국 — 함풍제
러시아
관련 장소
톈진, 베이징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853년 크림 전쟁
이후 사건
1861년 양무운동

이 사건이 든 테마

  • 동아시아의 개항과 근대화1839년 – 1901년

    아편 전쟁에서 신축 조약까지 — 서양의 함포 앞에 문을 연 청·일본·조선이 저마다 개혁에 나섰다가 서로 다른 길로 갈라진 6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