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무운동
다른 이름: 자강 운동, 중체서용
태평천국을 진압한 한인 관료들이 "중체서용"을 내걸고 서양의 무기·기술을 들여와 군수 공장·조선소·근대 기업을 세웠다. 청프·청일 전쟁에 지며 한계가 드러났다.

John Thomson · Public domain · 원본
제2차 아편 전쟁과 태평천국을 겪은 청은 1861년 총리각국사무아문을 두고 서양을 배우는 개혁에 나섰다. 쩡궈판·리훙장·쭤쭝탕 같은 한인 관료가 앞장섰다. 중국의 전통 제도와 유교 윤리를 근본(체)으로 지키고 서양의 기술만 쓰자(용)는 "중체서용"이 그 원칙이었다.
상하이의 강남 제조총국(1865), 푸저우 선정국(1866), 톈진 기기국 같은 군수 공장·조선소를 세우고, 외국어 학교인 동문관을 열고 미국에 유학생을 보냈다. 이어 윤선초상국 같은 근대 기업과 광산·철도·전신을 일으켰고, 1888년 북양 함대를 갖추었다. 조선이 1881년 영선사를 톈진에 보내 무기 제조를 배운 것도 이 무렵이다.
그러나 정치 제도는 그대로 두었고 관료들이 따로따로 추진해 힘이 모이지 않았다. 청프 전쟁(1884–1885)과 청일 전쟁(1894–1895)에 지면서 한계가 드러났고, 제도까지 바꾸자는 변법자강 운동이 뒤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