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훙장
청의 북양 대신. 임오군란 뒤 조선 정책을 주도했고 이토 히로부미와 톈진 조약, 시모노세키 조약을 맺었다
청의 북양 대신. 임오군란 뒤 조선 정책을 주도했고 이토 히로부미와 톈진 조약, 시모노세키 조약을 맺었다
홍슈취안이 이끈 농민군이 "멸만흥한"을 내걸고 난징을 수도로 태평천국을 세워 14년 동안 청에 맞섰다. 한인 관료의 향용과 서양 군대가 진압했다.
태평천국을 진압한 한인 관료들이 "중체서용"을 내걸고 서양의 무기·기술을 들여와 군수 공장·조선소·근대 기업을 세웠다. 청프·청일 전쟁에 지며 한계가 드러났다.
임오군란 뒤 청이 조선을 속방으로 명시한 무역 장정을 맺었다. 청 상인이 서울에 가게를 열고 내륙에서도 장사할 수 있게 되었다.
베트남의 종주권을 두고 청과 프랑스가 싸웠다. 청은 베트남에 대한 종주권을 잃었고, 그사이 조선에서는 갑신정변이 일어났다.
갑신정변 뒤 청의 리훙장과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가 두 나라 군대가 조선에서 함께 물러나고, 앞으로 파병할 때 서로 미리 알리기로 약속했다.
청일 전쟁을 끝낸 조약으로 일본은 타이완과 거액의 배상금을 얻었으나, 러시아·독일·프랑스의 삼국 간섭으로 랴오둥반도를 돌려주었다. 이어 열강이 청의 영토를 앞다투어 조차했다.
"부청멸양"을 내건 의화단이 교회와 철도를 공격하고 베이징의 공사관을 에워쌌다. 8개국 연합군이 베이징을 점령했고, 청은 신축 조약으로 막대한 배상금을 물고 외국 군대의 주둔을 받아들였다.
아편 전쟁에서 신축 조약까지 — 서양의 함포 앞에 문을 연 청·일본·조선이 저마다 개혁에 나섰다가 서로 다른 길로 갈라진 6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