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1841년 – 1909년

이토 히로부미

일본의 첫 총리대신. 을사늑약을 강요하고 초대 한국 통감이 되었다. 하얼빈역에서 안중근에게 저격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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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의 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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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건 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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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71년 – 1873년이와쿠라 사절단참여자

    메이지 정부의 지도자 절반이 1년 9개월 동안 미국과 유럽을 돌며 불평등 조약 개정을 타진하고 서양의 제도·산업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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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85년톈진 조약외교관

    갑신정변 뒤 청의 리훙장과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가 두 나라 군대가 조선에서 함께 물러나고, 앞으로 파병할 때 서로 미리 알리기로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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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근대 헌법을 반포하고 이듬해 제국 의회를 열었다. 천황이 주권을 가진 흠정 헌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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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일 전쟁을 끝낸 조약으로 일본은 타이완과 거액의 배상금을 얻었으나, 러시아·독일·프랑스의 삼국 간섭으로 랴오둥반도를 돌려주었다. 이어 열강이 청의 영토를 앞다투어 조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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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5년을사늑약주도자

    1905년 11월 17일, 이토 히로부미가 군대로 경운궁을 에워싸고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는 조약을 강요했다. 통감부가 설치되어 내정까지 간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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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7년고종 강제 퇴위주도자

    헤이그 특사를 구실로 일본과 친일 대신들이 고종을 압박해 황제 자리를 순종에게 넘기게 했다. 순종이 즉위해 연호를 융희로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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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종을 물러나게 한 일본이 한일 신협약을 강요해 정부 각 부의 차관을 일본인으로 앉혔다(차관 정치). 비밀 각서로 대한제국 군대도 해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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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9년안중근 의거관련자

    안중근이 만주 하얼빈역에서 한국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해 죽였다. 뤼순 감옥에 갇혀 『동양 평화론』을 쓰다 이듬해 순국했다.

함께 나오는 인물

  • 이완용1858년 – 1926년

    을사늑약에 찬성한 을사오적의 하나. 총리대신으로 한일 신협약·기유각서·병합 조약에 서명했다

  • 리훙장1823년 – 1901년

    청의 북양 대신. 임오군란 뒤 조선 정책을 주도했고 이토 히로부미와 톈진 조약, 시모노세키 조약을 맺었다

  • 고종1852년 – 1919년

    조선 제26대 왕이자 대한제국 첫 황제

  • 순종1874년 – 1926년

    대한제국 제2대이자 마지막 황제(연호 융희). 고종이 강제로 물러난 뒤 즉위했다

  • 이와쿠라 도모미1825년 – 1883년

    조정의 귀족으로 왕정복고를 이끈 메이지 정부의 지도자. 1871–1873년 구미 사절단의 전권 대사였다

  • 오쿠보 도시미치1830년 – 1878년

    사쓰마 출신으로 메이지 정부를 이끈 정치가. 폐번치현과 식산흥업을 밀었고, 정한론에 반대했다

  • 사이고 다카모리1828년 – 1877년

    사쓰마 출신의 메이지 유신 지도자. 정한론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물러났고, 세이난 전쟁을 일으켰다가 패해 죽었다

  • 메이지 일왕1852년 – 1912년

    일본의 122대 왕(재위 1867–1912). 그의 이름 아래 막부가 무너지고 메이지 유신과 대일본 제국 헌법 반포가 이루어졌다

이 인물이 나오는 테마

  • 동아시아의 개항과 근대화1839년 – 1901년

    아편 전쟁에서 신축 조약까지 — 서양의 함포 앞에 문을 연 청·일본·조선이 저마다 개혁에 나섰다가 서로 다른 길로 갈라진 60년

  • 서울기원전 18년 – 1988년

    한성 백제에서 6월 민주 항쟁까지 — 한강을 차지한 나라가 이긴 땅, 조선 500년의 도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