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907년 7월 20일

고종 강제 퇴위

헤이그 특사를 구실로 일본과 친일 대신들이 고종을 압박해 황제 자리를 순종에게 넘기게 했다. 순종이 즉위해 연호를 융희로 바꾸었다.

고종 퇴위를 알린 대한매일신보 호외 — 1907년 7월 19일
고종 퇴위를 알린 대한매일신보 호외 — 1907년 7월 19일

대한매일신보사 · CC BY-SA 4.0 · 원본

이토 히로부미와 이완용 내각은 고종에게 책임을 물어 양위를 강요했다. 고종은 7월 19일 황태자에게 국정을 대리하게 한다는 조칙을 냈을 뿐이지만, 일본은 다음 날 당사자 없이 양위식을 치러 이를 양위로 만들었다. 서울에서는 시민들이 반대 시위를 벌이고 이완용의 집을 불태웠다.

나흘 뒤 일본은 한일 신협약을 강요했다. 경운궁은 물러난 고종이 머무는 궁이 되어 덕수궁으로 불렸고, 순종은 창덕궁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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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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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대한제국 — 순종
일본 · 주도국 — 메이지 일왕
관련 장소
경운궁 (덕수궁)

관련 인물

  • 고종1852년 – 1919년

    군주 · 조선 제26대 왕이자 대한제국 첫 황제

  • 순종1874년 – 1926년

    군주 · 대한제국 제2대이자 마지막 황제(연호 융희). 고종이 강제로 물러난 뒤 즉위했다

  • 이토 히로부미1841년 – 1909년

    주도자 · 일본의 첫 총리대신. 을사늑약을 강요하고 초대 한국 통감이 되었다. 하얼빈역에서 안중근에게 저격당했다

  • 이완용1858년 – 1926년

    주도자 · 을사늑약에 찬성한 을사오적의 하나. 총리대신으로 한일 신협약·기유각서·병합 조약에 서명했다

앞뒤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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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헤이그 특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