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모노세키 조약과 삼국 간섭
다른 이름: 마관 조약, 삼국 간섭
청일 전쟁을 끝낸 조약으로 일본은 타이완과 거액의 배상금을 얻었으나, 러시아·독일·프랑스의 삼국 간섭으로 랴오둥반도를 돌려주었다. 이어 열강이 청의 영토를 앞다투어 조차했다.

Nagatochi Hideta 永地秀太 (1873–1942) · Public domain · 원본
1895년 4월 17일 시모노세키의 슌판로에서 리훙장과 이토 히로부미·무쓰 무네미쓰가 조약을 맺었다. 청은 조선이 자주독립국임을 인정해 조공 관계를 끊고, 랴오둥반도·타이완·펑후 제도를 넘기며, 2억 냥을 물고, 사스·충칭·쑤저우·항저우를 열고 개항장에 일본인이 공장을 세우도록 허락했다. 타이완에서는 주민들이 타이완 민주국을 세워 맞섰으나 일본군에 진압되었다.
엿새 뒤 만주로 남하하려던 러시아가 독일·프랑스와 함께 랴오둥반도를 돌려주라고 요구했고(삼국 간섭), 일본은 3천만 냥을 더 받고 물러났다. 일본은 "와신상담"을 내걸고 배상금으로 군비를 늘렸다. 청의 약함이 드러나자 1898년 독일(자오저우만)·러시아(뤼순·다롄)·영국(웨이하이웨이·주룽)·프랑스(광저우만)가 땅을 조차하고 철도·광산 이권을 나누어 가졌다(중국 분할). 조선에서는 러시아에 기대는 세력이 커졌고, 이것이 을미사변의 배경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