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895년 4월 17일 · 4월 23일

시모노세키 조약과 삼국 간섭

다른 이름: 마관 조약, 삼국 간섭

청일 전쟁을 끝낸 조약으로 일본은 타이완과 거액의 배상금을 얻었으나, 러시아·독일·프랑스의 삼국 간섭으로 랴오둥반도를 돌려주었다. 이어 열강이 청의 영토를 앞다투어 조차했다.

시모노세키 강화 회의 — 나가토치 히데타의 그림, 메이지 신궁 성덕기념회화관
시모노세키 강화 회의 — 나가토치 히데타의 그림, 메이지 신궁 성덕기념회화관

Nagatochi Hideta 永地秀太 (1873–1942) · Public domain · 원본

1895년 4월 17일 시모노세키의 슌판로에서 리훙장과 이토 히로부미·무쓰 무네미쓰가 조약을 맺었다. 청은 조선이 자주독립국임을 인정해 조공 관계를 끊고, 랴오둥반도·타이완·펑후 제도를 넘기며, 2억 냥을 물고, 사스·충칭·쑤저우·항저우를 열고 개항장에 일본인이 공장을 세우도록 허락했다. 타이완에서는 주민들이 타이완 민주국을 세워 맞섰으나 일본군에 진압되었다.

엿새 뒤 만주로 남하하려던 러시아가 독일·프랑스와 함께 랴오둥반도를 돌려주라고 요구했고(삼국 간섭), 일본은 3천만 냥을 더 받고 물러났다. 일본은 "와신상담"을 내걸고 배상금으로 군비를 늘렸다. 청의 약함이 드러나자 1898년 독일(자오저우만)·러시아(뤼순·다롄)·영국(웨이하이웨이·주룽)·프랑스(광저우만)가 땅을 조차하고 철도·광산 이권을 나누어 가졌다(중국 분할). 조선에서는 러시아에 기대는 세력이 커졌고, 이것이 을미사변의 배경이 되었다.

지도에서 보기

1895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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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일본 · 승전국 — 메이지 일왕
청 · 패전국 — 광서제
러시아
독일
프랑스

관련 인물

  • 리훙장1823년 – 1901년

    외교관 · 청의 북양 대신. 임오군란 뒤 조선 정책을 주도했고 이토 히로부미와 톈진 조약, 시모노세키 조약을 맺었다

  • 이토 히로부미1841년 – 1909년

    외교관 · 일본의 첫 총리대신. 을사늑약을 강요하고 초대 한국 통감이 되었다. 하얼빈역에서 안중근에게 저격당했다

  • 무쓰 무네미쓰1844년 – 1897년

    외교관 · 일본의 외무대신(1892–1896). 영국과의 조약 개정으로 치외 법권을 없앴고, 청일 전쟁과 시모노세키 조약을 이끌었다

이 사건이 든 테마

  • 동아시아의 개항과 근대화1839년 – 1901년

    아편 전쟁에서 신축 조약까지 — 서양의 함포 앞에 문을 연 청·일본·조선이 저마다 개혁에 나섰다가 서로 다른 길로 갈라진 6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