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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 백제에서 6월 민주 항쟁까지 — 한강을 차지한 나라가 이긴 땅, 조선 500년의 도읍

한성 백제에서 6월 민주 항쟁까지 — 한강을 차지한 나라가 이긴 땅, 조선 500년의 도읍

| 시대 | 사건 | 내용 |
|---|---|---|
| 백제 | 백제 건국 | 온조, 한강 유역 위례성 |
| 백제 | 석촌동 고분군 | 계단식 돌무지무덤, 고구려 계통 |
| 백제·고구려 | 한성 함락 | 장수왕, 개로왕 전사 → 웅진 천도 |
| 신라 | 북한산 순수비 | 진흥왕 한강 하류 차지, 김정희 고증 |
| 조선 | 한양 천도 | 태조(1394), 정도전의 도성 설계 |
| 조선 | 경복궁 창건 | 법궁, 정도전이 이름 지음 |
| 조선 | 원각사지 10층 석탑 | 세조, 경천사지 탑 본뜸(탑골 공원) |
| 조선 | 병자호란 | 남한산성 항전, 삼전도에서 항복 |
| 개항기 | 경복궁 중건 | 흥선 대원군, 원납전·당백전 |
| 개항기 | 임오군란 | 구식 군인 봉기, 청군 개입 |
| 개항기 | 갑신정변 |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 김옥균 |
| 대한제국 | 독립문 | 독립 협회, 영은문 자리 |
| 대한제국 | 을사늑약 | 경운궁 중명전, 외교권 박탈 |
| 일제 강점기 | 3·1 운동 | 태화관 선언식, 탑골 공원 만세 |
| 이승만 정부 | 4·19 혁명 | 경무대 앞 발포, 이승만 하야 |
| 전두환 정부 | 6월 민주 항쟁 | 박종철·이한열, 직선제 개헌 |
고구려에서 내려온 온조가 한강 유역의 위례성에 도읍하고 백제를 세웠다.
한성 백제의 왕릉급 무덤들. 고구려와 같은 계단식 돌무지무덤이 있어 백제 건국 세력이 고구려 계통임을 보여 준다.
장수왕이 3만 군사로 백제의 도읍 한성을 함락하고 개로왕을 죽였다. 백제는 웅진(공주)으로 도읍을 옮겼다.
진흥왕이 새로 넓힌 땅을 돌아보고 북한산·창녕·황초령·마운령에 비석을 세웠다.
태조가 도읍을 개경에서 한양으로 옮겼다. 정도전이 종묘·사직과 궁궐, 도성의 자리를 정했다.
새 도읍 한양에 법궁 경복궁을 지었다. 이름은 정도전이 시경의 구절에서 따왔다.
세조가 한양 한복판에 세운 원각사의 대리석 탑(1467). 고려의 경천사지 10층 석탑을 본떴으며, 숭유억불의 조선에서 드문 불교 문화유산이다.
청나라가 조선을 침입했다.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버티다 삼전도에서 항복했다.
고종이 열두 살에 즉위하자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실권을 잡고 세도 정치의 폐단을 고쳤다. 왕권을 세우고 민생을 안정시키려 했다.
밀린 급료에 분노한 구식 군대가 들고일어나 일본 공사관을 공격했다. 흥선대원군이 잠시 다시 집권했으나 청군이 그를 붙잡아 갔다.
김옥균 등 급진 개화파가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에서 정변을 일으켰다. 청군이 개입해 사흘 만에 끝났다.
독립 협회가 모금해 청 사신을 맞던 영은문 자리에 독립문을 세웠다. 1896년 11월 정초식을 열고 이듬해 11월 완공했다.
대한제국 때 경운궁(덕수궁) 안에 지은 서양식 돌 건물. 1900년 짓기 시작해 1910년 완공한 신고전주의 양식이다.
1905년 11월 17일, 이토 히로부미가 군대로 경운궁을 에워싸고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는 조약을 강요했다. 통감부가 설치되어 내정까지 간섭했다.
민족 대표 33인이 태화관에서 독립 선언식을 열고, 탑골 공원에서 학생과 시민이 독립 선언서를 읽고 만세 시위를 시작했다. 시위는 도시에서 농촌으로, 국외로 번졌다.
순종의 장례일에 학생들이 격문을 뿌리고 만세 시위를 벌였다. 민족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이 손잡는 계기가 되었다.
1960년 3·15 부정 선거에 맞선 학생과 시민의 시위가 4월 19일 절정에 이르러 이승만 정부가 물러났다.
박종철 고문 치사와 4·13 호헌 조치에 맞서 1987년 6월 10일부터 "호헌 철폐, 독재 타도"를 외친 시위가 전국에서 일어나, 6·29 선언으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 냈다.
제24회 하계 올림픽이 서울에서 열렸다. 냉전 이후 동서 진영이 함께한 대회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