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
청나라가 조선을 침입했다.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버티다 삼전도에서 항복했다.

Republic of Korea · CC BY-SA 2.0 · 원본
1636년 후금은 나라 이름을 청으로 바꾸고 조선에 형제 관계를 군신 관계로 바꾸자고 요구했다. 조정에서는 최명길 등의 주화론과 김상헌 등의 주전론(척화론)이 맞섰고, 주전론이 우세해 요구를 거절했다.
12월 청 태종(홍타이지)이 직접 10만여 군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백마산성의 임경업을 피해 곧장 한양으로 내려왔다. 왕실은 강화도로 피란했으나 인조는 길이 막혀 12월 14일 남한산성에 들어가 47일 동안 버텼다. 강화도가 함락되고 구원군도 무너지자, 1637년 1월 30일 인조는 성을 나와 삼전도에서 청 태종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예(삼배구고두례)를 올리고 항복했다.
조선은 청과 군신 관계를 맺고 명과의 관계를 끊었다. 소현 세자와 봉림 대군, 척화를 주장한 삼학사(홍익한·윤집·오달제)가 심양으로 끌려갔고, 수많은 백성이 포로로 잡혀갔다. 청의 요구로 삼전도비(대청 황제 공덕비)를 세웠다. 이 굴욕은 뒤에 효종의 북벌론으로 이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