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개혁과 절대 왕정
루터의 95개조에서 예카테리나 2세까지 — 갈라진 크리스트교 세계의 종교 전쟁이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끝나고, 왕권신수설·상비군·관료제·중상주의를 앞세운 절대 왕정과 동유럽의 계몽 전제 군주가 주권 국가의 세력 균형을 다투던 시대

Myrabella · CC BY-SA 3.0 · 원본
루터의 95개조에서 예카테리나 2세까지 — 갈라진 크리스트교 세계의 종교 전쟁이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끝나고, 왕권신수설·상비군·관료제·중상주의를 앞세운 절대 왕정과 동유럽의 계몽 전제 군주가 주권 국가의 세력 균형을 다투던 시대

Myrabella · CC BY-SA 3.0 · 원본
| 연도 | 나라 | 사건 | 핵심 |
|---|---|---|---|
| 1517 | 신성 로마 제국 | 루터의 종교 개혁 | 95개조 반박문, 믿음·성경으로만 |
| 1534 | 잉글랜드 | 수장법 | 헨리 8세, 영국 국교회 성립 |
| 1541 | 스위스(제네바) | 칼뱅의 개혁 | 예정설·직업 소명설, 상공업자 지지 |
| 1545–1563 | 교황령 | 트리엔트 공의회 | 반종교 개혁, 예수회(1540) |
| 1555 | 신성 로마 제국 | 아우크스부르크 화의 | 제후가 루터파 선택, 칼뱅파 제외 |
| 1562–1598 | 프랑스 | 위그노 전쟁 | 성 바르톨로메오 학살, 낭트 칙령 |
| 1568–1648 | 네덜란드 | 독립 전쟁 | 펠리페 2세에 맞섬, 1581 독립 선언 |
| 1588 | 잉글랜드 | 무적함대 격파 | 엘리자베스 1세, 해양 강국의 발판 |
| 1618–1648 | 신성 로마 제국 | 30년 전쟁 | 마지막 종교 전쟁 → 국제 전쟁 |
| 1648 | 신성 로마 제국 | 베스트팔렌 조약 | 칼뱅파 공인, 스위스·네덜란드 독립 |
| 1661–1715 | 프랑스 | 루이 14세 | 왕권신수설, 콜베르 중상주의, 베르사유 |
| 1697–1725 | 러시아 | 표트르 대제 | 서구화, 북방 전쟁, 상트페테르부르크 |
| 1701–1714 | 에스파냐 | 에스파냐 왕위 계승 전쟁 | 위트레흐트 조약, 영국 지브롤터 |
| 1740–1786 | 프로이센 | 프리드리히 2세 | 계몽 전제 군주, "국가 제일의 머슴" |
| 1756–1763 | 프로이센 · 영국 | 7년 전쟁 | 슐레지엔 확보, 영국 식민지 패권 |
| 1772–1795 | 러시아 · 프로이센 · 오스트리아 | 폴란드 분할 | 예카테리나 2세, 폴란드 소멸 |
루터가 비텐베르크에서 95개조 반박문을 내걸면서 종교 개혁이 시작되었다.
1521년 4월 루터는 보름스 제국 의회에서 황제 카를 5세 앞에 섰으나 주장을 거두지 않았고, 제국에서 법의 보호를 박탈당한 뒤 작센 선제후의 보호 아래 성경을 독일어로 옮겼다.
1524–1525년 남·중부 독일의 농민들이 종교 개혁에 기대어 농노제 폐지 등을 요구하며 봉기했으나 제후군에 진압되었고, 루터는 제후 편에 섰다.
오스만의 술레이만 1세가 모하치 전투에서 헝가리군을 무찌르고 3년 뒤 합스부르크의 빈을 포위했다. 오스만 제국이 유럽 깊숙이 들어와 전성기를 맞았다.
1534년 잉글랜드의 헨리 8세는 이혼 문제로 교황과 갈라서 수장법을 만들고 스스로 잉글랜드 교회의 수장이 되었다. 영국 국교회(성공회)의 시작이다.
1540년 교황 바오로 3세가 이그나티우스 데 로욜라의 예수회를 인가했다. 예수회는 교육과 해외 선교로 가톨릭 개혁(반종교 개혁)의 선봉이 되었다.
1541년 제네바로 돌아온 칼뱅은 엄격한 신앙 공동체를 세우고 예정설과 직업 소명설을 가르쳤다. 칼뱅파는 상공업자의 지지를 받아 위그노·고이센·청교도·장로교로 퍼졌다.
1545–1563년 가톨릭 교회는 트리엔트 공의회를 열어 교황의 권위와 전통 교리를 다시 확인하고 교회 내부를 개혁했다. 반종교 개혁(가톨릭 개혁)의 중심이다.
1555년 신성 로마 제국의 아우크스부르크 제국 의회에서 제후가 영지의 종교를 가톨릭과 루터파 가운데 고를 수 있게 되었다. 개인의 신앙 자유와 칼뱅파는 인정되지 않았다.
1562년부터 프랑스에서 가톨릭과 칼뱅파 신교도(위그노) 사이의 내전이 30여 년 이어졌다. 1598년 앙리 4세가 낭트 칙령으로 위그노의 신앙 자유를 인정해 전쟁을 끝냈다.
1568년 에스파냐의 펠리페 2세가 다스리던 네덜란드에서 칼뱅파가 많은 북부 주들이 오라녜 공 빌럼을 앞세워 봉기했다. 1581년 독립을 선언하고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에서 독립을 인정받았다.
1571년 10월 7일 에스파냐·베네치아·교황령의 신성 동맹 함대가 그리스 레판토 앞바다에서 오스만 함대를 크게 이겼다. 지중해에서 오스만의 확장이 멈추는 계기로 여겨진다.
1588년 에스파냐의 펠리페 2세가 잉글랜드를 치려고 보낸 대함대(무적함대)가 영국 해협에서 잉글랜드 해군에 막히고 폭풍까지 만나 크게 꺾였다. 잉글랜드가 해양 강국으로 자라는 출발점이 되었다.
1592년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면서 시작되어 1598년까지 이어진 7년 전쟁. 명나라가 원군을 보내 동아시아 국제전으로 번졌다.
1618년 보헤미아 신교도의 반란에서 시작해 1648년까지 신성 로마 제국을 무대로 벌어진 마지막 큰 종교 전쟁. 덴마크·스웨덴·프랑스가 끼어들며 유럽의 패권 전쟁이 되었다.
청나라가 조선을 침입했다.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버티다 삼전도에서 항복했다.
1648년 뮌스터와 오스나브뤼크에서 맺은 조약으로 30년 전쟁이 끝났다. 칼뱅파가 공인되고 스위스·네덜란드의 독립이 인정되었으며, 주권 국가들이 나란히 서는 근대 국제 질서가 열렸다.
네덜란드 상선 스페르베르호가 제주에 난파했다. 하멜 일행은 13년 동안 조선에 머물다 탈출했고, 그가 쓴 표류기가 유럽에 조선을 알렸다.
1661년 직접 나라를 다스리기 시작한 루이 14세는 왕권신수설을 내세우고 상비군과 관료제, 콜베르의 중상주의로 절대 왕정을 완성했으며, 1682년 베르사유 궁전으로 궁정을 옮겼다.
숙종이 집권 붕당을 한꺼번에 갈아 치우는 환국을 세 차례 일으켰다(경신·기사·갑술). 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졌다.
1685년 루이 14세는 퐁텐블로 칙령으로 낭트 칙령을 폐지하고 신교를 금했다. 수십만 명의 위그노가 네덜란드·영국·프로이센 등으로 떠났다.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는 서유럽 사절단(1697–1698)으로 선진 기술을 배운 뒤 군대·행정·풍속을 서구식으로 고쳤고, 북방 전쟁에서 스웨덴을 이겨 발트해로 나아가 상트페테르부르크(1703)를 새 수도로 삼았다.
1701–1714년 에스파냐 합스부르크 왕가가 끊기자 루이 14세의 손자 펠리페 5세의 즉위를 두고 프랑스·에스파냐와 영국·네덜란드·오스트리아가 싸웠다. 위트레흐트 조약으로 펠리페 5세는 왕위를 지켰으나 영국이 지브롤터와 북아메리카 땅을 얻었다.
1740년 즉위한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는 슐레지엔을 차지해 프로이센을 강국으로 키웠고, "군주는 국가 제일의 머슴"이라며 위로부터의 개혁을 편 계몽 전제 군주였다.
1740년 마리아 테레지아가 합스부르크 영토를 물려받자 프로이센이 슐레지엔을 침공하고 프랑스·바이에른 등이 가세했다. 1748년 아헨 조약으로 마리아 테레지아는 상속을 인정받았으나 슐레지엔은 프로이센에 넘어갔다.
영조가 붕당을 가리지 않고 인재를 고루 쓰겠다는 뜻을 성균관 앞 비석에 새겼다.
1756–1763년 슐레지엔을 되찾으려는 오스트리아가 프랑스·러시아와 손잡고 프로이센과 싸웠고, 영국과 프랑스는 북아메리카·인도에서 식민지를 다투었다. 영국이 프랑스를 누르고 식민지 패권을 잡았다.
1762년 궁정 쿠데타로 즉위한 예카테리나 2세는 계몽사상가와 편지를 나누며 개혁 군주로 자신을 내세웠으나, 푸가초프의 난 뒤 귀족의 특권과 농노제를 강화했고 오스만 제국과 싸워 흑해 연안과 크림반도를 얻었다.
1772·1793·1795년 세 차례에 걸쳐 러시아·프로이센·오스트리아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땅을 나누어 가졌다. 폴란드는 1918년까지 지도에서 사라졌다.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옮긴 수원에 새 성을 쌓았다. 정약용이 설계에 참여하고 거중기를 썼으며, 공사 기록은 화성성역의궤로 남았다.
프로이센의 왕(재위 1740–1786). 슐레지엔을 빼앗아 프로이센을 강국으로 키웠고, "군주는 국가 제일의 머슴"이라 한 계몽 전제 군주다
에스파냐의 왕(재위 1556–1598). 카를 5세의 아들로 레판토 해전에서 이겼고 포르투갈을 합쳤으나, 네덜란드 독립 전쟁과 무적함대의 패배를 겪었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상속자로 오스트리아·헝가리·보헤미아를 다스렸다(1740–1780).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과 7년 전쟁을 치르며 나라를 개혁했다
러시아의 여제(재위 1762–1796). 독일 출신으로 궁정 쿠데타로 즉위해 계몽 전제 정치를 내세웠고, 흑해 연안과 폴란드 분할로 영토를 넓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