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1534년 11월

수장법과 영국 국교회 성립

다른 이름: 영국 국교회, 성공회, 수장령

1534년 잉글랜드의 헨리 8세는 이혼 문제로 교황과 갈라서 수장법을 만들고 스스로 잉글랜드 교회의 수장이 되었다. 영국 국교회(성공회)의 시작이다.

헨리 8세 — 한스 홀바인(아들)의 초상화, 1537년 무렵 (로마 국립 고전 미술관)
헨리 8세 — 한스 홀바인(아들)의 초상화, 1537년 무렵 (로마 국립 고전 미술관)

Hans Holbein the Younger · Public domain · 원본

헨리 8세는 아들을 얻지 못하자 형의 미망인이던 왕비 캐서린(에스파냐 왕실 출신)과의 결혼을 무효로 해 달라고 교황에게 청했으나, 캐서린의 조카인 황제 카를 5세의 눈치를 보던 교황은 들어주지 않았다. 헨리는 1533년 캔터베리 대주교 크랜머를 시켜 결혼을 무효로 하고 앤 불린과 결혼했다.

1534년 11월 의회는 수장법을 통과시켜 국왕을 "잉글랜드 교회의 지상 유일한 최고 수장"으로 정했다. 이를 거부한 토머스 모어는 처형되었고, 1536–1541년 수도원을 해산해 그 땅을 왕실과 젠트리가 차지했다. 그러나 헨리 때의 교리와 의식은 가톨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에드워드 6세 때 신교로 기울었다가 메리 1세가 가톨릭으로 되돌렸고, 엘리자베스 1세가 1559년 수장법·통일령을 다시 내고 「39개조」(1563)로 국교회의 틀을 굳혔다. 국교회의 개혁이 모자란다고 본 칼뱅파는 청교도가 되었다. 같은 때 조선에서는 중종이 다스리며 사림이 다시 자라고 있었다.

지도에서 보기

1534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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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
잉글랜드
관련 장소
런던

관련 인물

  • 헨리 8세1491년 – 1547년

    군주 · 잉글랜드 튜더 왕조의 왕(재위 1509–1547). 이혼 문제로 교황과 갈라서 수장법(1534)으로 영국 국교회의 수장이 되었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455년 장미 전쟁

관련 작품

  • 책: 울프 홀각색책 · 2009 · 힐러리 맨틀 (하윤숙 옮김) · 올

각색한 작품(영화·드라마·소설)은 실제 역사와 다를 수 있습니다.

이 사건이 든 테마

  • 종교 개혁과 절대 왕정1517년 – 1796년

    루터의 95개조에서 예카테리나 2세까지 — 갈라진 크리스트교 세계의 종교 전쟁이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끝나고, 왕권신수설·상비군·관료제·중상주의를 앞세운 절대 왕정과 동유럽의 계몽 전제 군주가 주권 국가의 세력 균형을 다투던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