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장법과 영국 국교회 성립
다른 이름: 영국 국교회, 성공회, 수장령
1534년 잉글랜드의 헨리 8세는 이혼 문제로 교황과 갈라서 수장법을 만들고 스스로 잉글랜드 교회의 수장이 되었다. 영국 국교회(성공회)의 시작이다.

Hans Holbein the Younger · Public domain · 원본
헨리 8세는 아들을 얻지 못하자 형의 미망인이던 왕비 캐서린(에스파냐 왕실 출신)과의 결혼을 무효로 해 달라고 교황에게 청했으나, 캐서린의 조카인 황제 카를 5세의 눈치를 보던 교황은 들어주지 않았다. 헨리는 1533년 캔터베리 대주교 크랜머를 시켜 결혼을 무효로 하고 앤 불린과 결혼했다.
1534년 11월 의회는 수장법을 통과시켜 국왕을 "잉글랜드 교회의 지상 유일한 최고 수장"으로 정했다. 이를 거부한 토머스 모어는 처형되었고, 1536–1541년 수도원을 해산해 그 땅을 왕실과 젠트리가 차지했다. 그러나 헨리 때의 교리와 의식은 가톨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에드워드 6세 때 신교로 기울었다가 메리 1세가 가톨릭으로 되돌렸고, 엘리자베스 1세가 1559년 수장법·통일령을 다시 내고 「39개조」(1563)로 국교회의 틀을 굳혔다. 국교회의 개혁이 모자란다고 본 칼뱅파는 청교도가 되었다. 같은 때 조선에서는 중종이 다스리며 사림이 다시 자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