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742년
탕평비 건립
영조가 붕당을 가리지 않고 인재를 고루 쓰겠다는 뜻을 성균관 앞 비석에 새겼다.

숙종의 환국과 경종 때의 신임옥사로 붕당 다툼이 극에 달했고, 영조 즉위 뒤 이인좌의 난(1728)까지 일어났다. 영조는 탕평 교서를 내려 탕평파를 키우고, 붕당의 근거지가 된 서원을 대거 정리했으며, 이조 전랑의 후임자 추천권을 없앴다.
탕평비에는 "두루 사귀되 편당 짓지 않는 것은 군자의 공정한 마음이요, 편당 짓되 두루 사귀지 않는 것은 소인의 사사로운 생각이다"라고 새겼다. 강한 왕권으로 붕당을 누른 데 그쳐 다툼의 뿌리를 없애지는 못했고, 탕평은 정조에게 이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