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당 정치의 전개
사화에서 세도 정치까지 — 사림의 붕당이 공존과 견제에서 환국·일당 전제로, 탕평을 거쳐 몇 가문의 독점으로 바뀐 길

사화에서 세도 정치까지 — 사림의 붕당이 공존과 견제에서 환국·일당 전제로, 탕평을 거쳐 몇 가문의 독점으로 바뀐 길

| 사건 | 왕 | 내용 | 결과(집권 붕당) |
|---|---|---|---|
| 사화 (1498~1545) | 연산군~명종 | 훈구·외척이 사림 탄압 (무오·갑자·기묘·을사) | 사림 위축 → 서원·향약으로 성장 |
| 동서 분당 (1575) | 선조 | 이조 전랑 자리 다툼 (김효원·심의겸) | 동인·서인으로 나뉨 |
| 정여립 모반·기축옥사 (1589) | 선조 | 서인 정철이 동인 처벌, 건저의 사건 | 동인 → 남인·북인 분당 |
| 북인 정권 | 광해군 | 중립 외교, 영창 대군 살해·인목 대비 유폐 | 북인 집권 |
| 인조반정 (1623) | 인조 | 서인이 광해군을 몰아냄 (폐모살제·중립 외교 명분) | 서인 주도, 남인 참여 (공존) |
| 예송 (1659·1674) | 현종 | 자의 대비의 상복 기간 논쟁 | 기해: 서인 / 갑인: 남인 |
| 경신환국 (1680) | 숙종 | 허적의 유악 사건·허견 역모 | 서인 집권 → 노론·소론 분열 |
| 기사·갑술환국 (1689·1694) | 숙종 | 원자 책봉 / 인현 왕후 복위 | 남인 → 서인 (이후 남인 몰락) |
| 신임옥사 (1721~1722) | 경종 | 연잉군 왕세제 책봉·대리청정 다툼 | 소론 집권, 노론 4대신 처형 |
| 영조의 탕평 (탕평비 1742) | 영조 | 탕평파 육성, 서원 정리, 전랑 권한 축소 | 완론 탕평, 노론 우세 |
| 정조의 탕평 | 정조 | 준론 탕평, 규장각·장용영, 남인·서얼 등용 | 시파·벽파 대립, 왕권 강화 |
| 세도 정치 (1800~1863) | 순조·헌종·철종 | 외척 가문이 비변사 장악, 삼정 문란 | 안동 김씨·풍양 조씨 독점 |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이 세조를 비난한 글이라 하여, 연산군이 김일손 등 사림을 죽이고 귀양 보냈다. 첫 사화다.
연산군이 어머니 폐비 윤씨의 죽음에 얽힌 신하들을 대거 죽였다. 폭정이 심해져 2년 뒤 반정이 일어났다.
박원종 등이 연산군을 몰아내고 진성대군을 왕으로 세웠다(중종). 연산군은 강화 교동도로 쫓겨났다.
급진 개혁을 밀어붙이던 조광조와 사림이 훈구파의 반격으로 쫓겨났다. 조광조는 유배지 능주에서 사약을 받았다.
명종이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외척 윤원형(소윤)이 윤임(대윤)과 그를 따르던 사림을 몰아냈다. 네 번째 사화다.
이조 전랑 자리를 두고 김효원과 심의겸이 맞서면서 사림이 동인과 서인으로 갈라졌다. 붕당 정치의 시작이다.
동인 정여립이 반역을 꾀했다는 고변으로 그가 자결하고, 서인 정철이 옥사를 맡아 동인 1천여 명이 화를 입었다.
명의 요청으로 강홍립이 이끄는 조선군을 후금 정벌에 보냈으나, 사르후 전투에서 명군이 크게 지자 강홍립은 후금에 항복했다. 광해군은 명과 후금 사이에서 중립을 지켰다.
서인이 광해군을 몰아내고 능양군을 왕으로 세웠다(인조). 친명배금으로 돌아서며 후금과의 관계가 나빠졌다.
효종과 효종비가 죽었을 때 자의 대비가 상복을 얼마 동안 입을지를 두고 서인과 남인이 두 차례 맞섰다. 기해예송은 서인이, 갑인예송은 남인이 이겼다.
숙종이 집권 붕당을 한꺼번에 갈아 치우는 환국을 세 차례 일으켰다(경신·기사·갑술). 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졌다.
경종 때 왕세제(영조) 책봉과 대리청정을 둘러싸고 노론과 소론이 맞서, 소론이 노론 4대신 등을 몰아내고 처형했다.
소론 강경파와 일부 남인이 경종의 죽음에 영조가 얽혔다며 영조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난을 일으켰다. 청주성을 점령했으나 곧 진압되었다(무신란).
영조가 붕당을 가리지 않고 인재를 고루 쓰겠다는 뜻을 성균관 앞 비석에 새겼다.
영조가 세자를 폐하고 창경궁 문정전 앞 뒤주에 가두었다. 사도세자는 여드레 만에 숨졌다.
정조가 즉위하자마자 창덕궁 후원에 왕실 도서관이자 학문·정책 연구 기관인 규장각을 세웠다.
정조가 왕의 친위 부대 장용영을 두어 도성에 내영, 수원 화성에 외영을 설치했다. 초계문신제로 젊은 관리를 다시 교육했다.
정조가 죽은 뒤 순조·헌종·철종 3대 60여 년 동안 안동 김씨·풍양 조씨 같은 왕의 외척 가문이 권력을 독차지했다. 삼정이 문란해져 농민 봉기가 잇따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