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519년 11월 15일(음력)

기묘사화

급진 개혁을 밀어붙이던 조광조와 사림이 훈구파의 반격으로 쫓겨났다. 조광조는 유배지 능주에서 사약을 받았다.

용인 심곡서원 — 조광조를 모신 서원
용인 심곡서원 — 조광조를 모신 서원

Mer du Japon (Korean Wikipedia) · Public domain · 원본

중종은 반정 공신을 견제하려고 조광조 등 사림을 등용했다. 조광조는 현량과로 사림을 대거 뽑고, 도교 제사를 맡던 소격서의 폐지(1518)와 향약 보급, "소학" 교육을 추진했다. 1519년 반정 공신 가운데 공이 없는 76명의 공훈을 깎는 위훈 삭제를 밀어붙이자 남곤·심정·홍경주 등 훈구파가 반격했다. 나뭇잎에 꿀로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 써 벌레가 갉아 먹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급진 개혁에 지친 중종도 등을 돌렸고, 현량과는 폐지되었다.

지도에서 보기

1519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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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조선 — 중종

관련 인물

  • 중종1488년 – 1544년

    군주 · 조선 제11대 왕. 반정으로 왕이 되어 조광조를 등용했다가 기묘사화로 내쳤다

  • 조광조1482년 – 1520년

    관련자 · 도학 정치를 내세운 개혁가. 기묘사화로 능주에 유배되어 사약을 받았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519년 현량과 실시
이후 사건
1530년 신사임당의 초충도

관련 작품

  • 방송: 역사저널 그날 제169회 「비운의 개혁가 조광조, 그는 누구인가?」방송 · 2018 · 송웅섭 · KBS 1TV

이 사건이 든 테마

  • 붕당 정치의 전개1498년 – 1863년

    사화에서 세도 정치까지 — 사림의 붕당이 공존과 견제에서 환국·일당 전제로, 탕평을 거쳐 몇 가문의 독점으로 바뀐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