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epublic of Korea · CC BY-SA 2.0 · 원본
중종
조선 제11대 왕. 반정으로 왕이 되어 조광조를 등용했다가 기묘사화로 내쳤다
성종의 둘째 아들로 진성대군이었다. 1510년 삼포왜란이 일어나자 임시 기구로 비변사를 처음 두었다. 조광조의 도학 정치를 받아들여 현량과를 실시했으나 개혁이 지나치다고 여겨 1519년 기묘사화로 사림을 내쳤다. 재위 중인 1543년 주세붕이 첫 서원인 백운동서원을 세웠다.

Republic of Korea · CC BY-SA 2.0 · 원본
조선 제11대 왕. 반정으로 왕이 되어 조광조를 등용했다가 기묘사화로 내쳤다
성종의 둘째 아들로 진성대군이었다. 1510년 삼포왜란이 일어나자 임시 기구로 비변사를 처음 두었다. 조광조의 도학 정치를 받아들여 현량과를 실시했으나 개혁이 지나치다고 여겨 1519년 기묘사화로 사림을 내쳤다. 재위 중인 1543년 주세붕이 첫 서원인 백운동서원을 세웠다.
박원종 등이 연산군을 몰아내고 진성대군을 왕으로 세웠다(중종). 연산군은 강화 교동도로 쫓겨났다.
부산포·제포·염포에 살던 일본인들이 쓰시마의 도움을 받아 난을 일으켰다. 진압 뒤 교역이 크게 줄었다.
조광조의 건의로 학문과 덕행이 뛰어난 인재를 천거받아 간단한 시험으로 뽑는 현량과를 실시했다. 사림 28명이 뽑혔다.
급진 개혁을 밀어붙이던 조광조와 사림이 훈구파의 반격으로 쫓겨났다. 조광조는 유배지 능주에서 사약을 받았다.


사화에서 세도 정치까지 — 사림의 붕당이 공존과 견제에서 환국·일당 전제로, 탕평을 거쳐 몇 가문의 독점으로 바뀐 길
북로남왜와 은 경제에 흔들린 명이 이자성의 난으로 무너지고, 만주의 청이 강희·옹정·건륭 3대에 가장 넓은 영토와 번영을 이룬 시대 — 일본은 전국 시대의 통일을 거쳐 에도 막부의 막번 체제와 쇄국으로, 조선은 두 차례 전쟁 뒤 통신사와 북학으로 이웃과 만났다
왜관과 개항의 항구 — 일본과 만나고 부딪힌 관문이자 6·25 전쟁 때의 임시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