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왜관과 개항의 항구 — 일본과 만나고 부딪힌 관문이자 6·25 전쟁 때의 임시 수도

변박 (卞璞) · Public domain · 원본
왜관과 개항의 항구 — 일본과 만나고 부딪힌 관문이자 6·25 전쟁 때의 임시 수도

변박 (卞璞) · Public domain · 원본
세종 때 쓰시마 도주와 약조를 맺어 일본과의 교역을 세견선 1년 50척, 세사미두 200석으로 제한했다.
부산포·제포·염포에 살던 일본인들이 쓰시마의 도움을 받아 난을 일으켰다. 진압 뒤 교역이 크게 줄었다.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끈 일본군 제1번대가 부산에 상륙해 부산진성을 하루 만에 함락했다. 첨사 정발이 성을 지키다 전사했다.
임진왜란 뒤 조선이 쓰시마와 기유약조를 맺어 일본과의 교역을 다시 열었다. 부산포 한 곳만 열고 세견선을 20척으로 제한했다.
동래부 두모포에 있던 왜관을 초량으로 옮겨 크게 지었다. 조선 후기 일본과의 무역은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울릉도에서 일본 어민과 부딪친 안용복이 두 차례 일본에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땅이라고 주장했다.
1876년 음력 2월 3일(양력 2월 27일) 조선이 일본과 맺은 첫 근대 조약. 부산 등 세 항구를 열었고 불평등 조항이 담겼다.
북한군이 38도선 전역에서 남쪽으로 쳐내려와 사흘 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낙동강까지 내려왔다.
임시 수도 부산에서 이승만 정부가 계엄을 펴고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부산과 마산에서 학생과 시민이 유신 체제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정부는 계엄령과 위수령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