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609년 5월(음력)

기유약조 체결

임진왜란 뒤 조선이 쓰시마와 기유약조를 맺어 일본과의 교역을 다시 열었다. 부산포 한 곳만 열고 세견선을 20척으로 제한했다.

쓰시마 도주 소 요시토시 — 기유약조를 맺은 쓰시마 쪽 당사자
쓰시마 도주 소 요시토시 — 기유약조를 맺은 쓰시마 쪽 당사자

작자 미상 · Public domain · 원본

조선은 1607년 회답 겸 쇄환사를 보내 일본과 국교를 회복하고 포로를 데려왔다. 1609년 쓰시마 도주와 맺은 기유약조로 부산에 왜관을 두고, 세견선 20척·세사미두 100석으로 교역을 엄격히 제한했다. 이후 통신사가 에도 막부에 12차례 파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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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9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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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조선 · 체결국 — 광해군
일본 · 체결국
관련 장소
부산

관련 인물

  • 광해군1575년 – 1641년

    군주 · 조선 제15대 왕. 대동법을 시작하고 명·후금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폈으나 인조반정으로 쫓겨났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608년 대동법 시행
이후 사건
1610년 동의보감 완성

이 사건이 든 테마

  • 명·청과 에도 일본1500년 – 1800년

    북로남왜와 은 경제에 흔들린 명이 이자성의 난으로 무너지고, 만주의 청이 강희·옹정·건륭 3대에 가장 넓은 영토와 번영을 이룬 시대 — 일본은 전국 시대의 통일을 거쳐 에도 막부의 막번 체제와 쇄국으로, 조선은 두 차례 전쟁 뒤 통신사와 북학으로 이웃과 만났다

  • 부산1443년 – 1979년

    왜관과 개항의 항구 — 일본과 만나고 부딪힌 관문이자 6·25 전쟁 때의 임시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