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tagawa Yoshiiku · Public domain · 원본
고니시 유키나가
일본군 제1번대를 이끌고 부산에 처음 상륙해 평양까지 올라간 장수

Utagawa Yoshiiku · Public domain · 원본
일본군 제1번대를 이끌고 부산에 처음 상륙해 평양까지 올라간 장수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끈 일본군 제1번대가 부산에 상륙해 부산진성을 하루 만에 함락했다. 첨사 정발이 성을 지키다 전사했다.
부산진을 무너뜨린 일본군이 이튿날 동래성을 에워쌌다. 부사 송상현은 "싸워 죽기는 쉬워도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며 맞서다 전사했다.
순변사 이일이 급히 모은 군사로 상주 북천에서 일본군을 맞았으나 조총에 무너졌다. 이일은 홀로 달아나 충주의 신립에게 갔다.
신립이 충주 탄금대에 배수진을 치고 고니시 유키나가의 일본군에 맞섰으나 크게 져 전사했다. 충주가 무너지자 선조는 한양을 떠나 피란했다.
부산에 오른 지 20일 만에 일본군이 한양에 들어왔다. 고니시 유키나가가 5월 2일 동대문으로, 가토 기요마사가 3일 남대문으로 들어왔다.
선조가 떠난 뒤 고니시 유키나가의 일본군이 대동강을 건너 평양성에 들어왔다. 고니시는 이듬해 1월까지 평양에 머물렀다.
이여송이 이끈 명나라 원군과 조선군이 평양성을 되찾았다. 고니시 유키나가의 일본군은 남쪽으로 물러났다.
명의 심유경과 일본의 고니시 유키나가가 3년 넘게 강화를 꾸몄으나, 서로 속인 조건이 드러나 1596년 깨졌다. 이듬해 일본이 다시 쳐들어왔다(정유재란).
전년의 진주대첩을 갚으려는 히데요시의 명령으로 일본군 9만여 명이 진주성을 에워쌌다. 9일 만에 성이 무너지고 성 안의 군사와 백성 6만여 명이 죽었다.
1598년 8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후시미성에서 죽었다. 일본은 죽음을 숨긴 채 조선의 일본군에 철수를 명했고, 물러나는 길목에서 노량 해전이 벌어졌다.
1600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이시다 미쓰나리의 서군을 꺾고, 1603년 쇼군이 되어 에도에 막부를 열었다. 에도 막부는 1867년까지 260여 년 이어졌다.

일본의 침략부터 노량해전까지 — 육지의 의병과 바다의 이순신, 명의 참전
북로남왜와 은 경제에 흔들린 명이 이자성의 난으로 무너지고, 만주의 청이 강희·옹정·건륭 3대에 가장 넓은 영토와 번영을 이룬 시대 — 일본은 전국 시대의 통일을 거쳐 에도 막부의 막번 체제와 쇄국으로, 조선은 두 차례 전쟁 뒤 통신사와 북학으로 이웃과 만났다
고조선 왕검성에서 남북 정상 회담까지 — 고구려의 도읍이자 고려의 서경, 대동강 가의 북쪽 중심 도시
고구려비에서 탄금대까지 — 남한강 물길의 한가운데, 삼국이 다툰 중원의 고장
왜관과 개항의 항구 — 일본과 만나고 부딪힌 관문이자 6·25 전쟁 때의 임시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