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600년 10월 21일 (세키가하라) · 1603년 (에도 막부)

세키가하라 전투와 에도 막부 성립

다른 이름: 세키가하라 전투, 도쿠가와 막부, 에도 막부

1600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이시다 미쓰나리의 서군을 꺾고, 1603년 쇼군이 되어 에도에 막부를 열었다. 에도 막부는 1867년까지 260여 년 이어졌다.

「세키가하라 전투도 병풍」 — 북쪽에서 내려다본 싸움터 (에도 시대 후기), 기후시 역사 박물관
「세키가하라 전투도 병풍」 — 북쪽에서 내려다본 싸움터 (에도 시대 후기), 기후시 역사 박물관

Collection of The City of Gifu Museum of History · Public domain · 원본

1598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자, 어린 아들 히데요리를 받드는 다섯 다이로(5대로) 가운데 가장 힘이 센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실권을 쥐려 했다. 이에 맞선 이시다 미쓰나리가 서쪽 다이묘를 모아(서군) 1600년 미노의 세키가하라에서 이에야스의 동군과 맞붙었다. 서군의 고바야카와 히데아키가 싸움 도중 동군으로 돌아서면서 하루 만에 동군이 이겼다. 임진왜란 때 선봉이었던 고니시 유키나가는 서군에 섰다가 처형되었다.

1603년 이에야스는 정이대장군(쇼군)에 올라 에도(오늘 도쿄)에 막부를 열었다. 1605년 쇼군 자리를 아들 히데타다에게 물려주어 도쿠가와 집안이 대대로 잇는다는 것을 보였고, 1614~1615년 오사카 전투로 도요토미 집안을 없앴다. 이후 에도 막부는 1867년 대정봉환까지 260여 년 동안 큰 전쟁 없는 평화를 이어 갔다.

이에야스는 조선과의 국교 회복에 나섰다. 그가 임진왜란에 군사를 보내지 않았다는 점이 조선이 그를 상대할 수 있었던 까닭의 하나였다. 조선은 1604년 사명대사 유정을 보내 일본의 사정을 살폈고, 1607년 사절을 보내 국교를 되살렸으며, 1609년 쓰시마와 기유약조를 맺어 부산 왜관의 교역을 다시 열었다.

지도에서 보기

1600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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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
일본
관련 장소
세키가하라, 에도성

관련 인물

  • 도쿠가와 이에야스1543년 – 1616년

    주도자 · 에도 막부를 연 무사.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이기고 1603년 쇼군이 되었으며, 1615년 도요토미 집안을 없앴다

  • 고니시 유키나가1558년 – 1600년

    참여자 · 일본군 제1번대를 이끌고 부산에 처음 상륙해 평양까지 올라간 장수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592년 임진왜란
이후 사건
1607년 조선 통신사

관련 작품

  • 드라마: 쇼군각색드라마 · 2024 · 레이철 콘도 · 저스틴 마크스 · FX

각색한 작품(영화·드라마·소설)은 실제 역사와 다를 수 있습니다.

이 사건이 든 테마

  • 명·청과 에도 일본1500년 – 1800년

    북로남왜와 은 경제에 흔들린 명이 이자성의 난으로 무너지고, 만주의 청이 강희·옹정·건륭 3대에 가장 넓은 영토와 번영을 이룬 시대 — 일본은 전국 시대의 통일을 거쳐 에도 막부의 막번 체제와 쇄국으로, 조선은 두 차례 전쟁 뒤 통신사와 북학으로 이웃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