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통신사
다른 이름: 통신사, 조선 통신사 행렬
임진왜란 뒤 조선이 에도 막부에 보낸 외교 사절. 1607년부터 1811년까지 열두 차례 일본에 가서 국교와 문화 교류를 이었다.

The artist is Tōei Hanegawa. Collection of The City of Kobe Museum of Art, the Hajime Ikenaga Gallery · Public domain · 원본
임진왜란 뒤 도쿠가와 막부는 조선과의 국교 회복을 원했다. 조선은 일본의 국서에 답하고 포로를 데려오려고 1607년 회답 겸 쇄환사를 보냈고, 1609년 기유약조로 부산 왜관의 교역을 다시 열었다. 1636년부터는 "믿음으로 통한다"는 뜻의 통신사라는 이름을 썼고, 1811년까지 모두 열두 차례 사절이 일본에 갔다.
300~500명에 이르는 사절단은 한양을 떠나 부산에서 배를 타고 쓰시마를 거쳐 오사카에 내린 뒤, 대개 육로로 에도까지 갔다. 주로 새 쇼군이 즉위했을 때 축하하러 갔고, 막부는 길목의 다이묘에게 접대를 맡겨 큰돈을 들였다. 일본의 학자와 문인들이 숙소로 몰려와 시문과 글씨를 청했고, 통신사 행렬은 그림과 축제로 남았다. 신유한의 『해유록』 같은 사행 기록은 조선에 일본의 사정을 알렸다.
마지막 통신사(1811)는 비용 문제로 에도까지 가지 않고 쓰시마에서 국서를 주고받았다(역지 통신). 2017년 조선 통신사 기록물은 한국과 일본의 민간 단체가 함께 신청해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