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450년 – 1895년8건

충주

고구려비에서 탄금대까지 — 남한강 물길의 한가운데, 삼국이 다툰 중원의 고장

충주 고구려비 — 한반도에 남은 유일한 고구려 비석
충주 고구려비 — 한반도에 남은 유일한 고구려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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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에서 보기

한눈에 비교

시대사건내용
고구려충주 고구려비"고려 대왕"·"동이 매금", 신라에 의복 하사
고구려장수왕의 남진한성 함락(475), 남한강 유역 차지
통일 신라국원경(중원경)5소경의 하나, 탑평리 7층 석탑
고려충주성 전투김윤후, 노비 문서 불태움 · 다인철소
조선충주 사고실록을 나누어 둔 4대 사고의 하나
조선탄금대 전투신립 배수진 패배(1592) → 선조 피란
개항기임오군란왕비가 충주 장호원으로 피신
개항기을미의병유인석, 충주성 점령

지도로 보는 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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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의 사건 8건

  1. 고구려가 남한강 유역의 충주에 세운 비석. 한반도에 남은 유일한 고구려 비석으로, 고구려가 남한강 유역까지 내려와 신라에 영향력을 미쳤음을 보여 준다.

  2. 장수왕이 3만 군사로 백제의 도읍 한성을 함락하고 개로왕을 죽였다. 백제는 웅진(공주)으로 도읍을 옮겼다.

  3. 신문왕이 전국을 9주로 나누고 5소경을 두어 통일 신라의 지방 제도를 완성했다.

  4. 몽골의 5차 침입 때 김윤후가 충주성을 70여 일 동안 지켜 냈다. 관노비의 노비 문서를 불태워 신분 해방을 약속하자 성안 사람들이 힘을 다해 싸웠다.

  5. 태종 때 태조실록을 엮으면서 왕이 죽으면 그 왕의 실록을 편찬하는 일이 시작되었다. 태조부터 철종까지 472년을 편년체로 적었다.

  6. 신립이 충주 탄금대에 배수진을 치고 고니시 유키나가의 일본군에 맞섰으나 크게 져 전사했다. 충주가 무너지자 선조는 한양을 떠나 피란했다.

  7. 밀린 급료에 분노한 구식 군대가 들고일어나 일본 공사관을 공격했다. 흥선대원군이 잠시 다시 집권했으나 청군이 그를 붙잡아 갔다.

  8. 1895년 – 1896년을미의병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분노한 유인석·이소응 등 유생이 의병을 일으켰다. 아관파천 뒤 고종이 해산을 권하자 대부분 흩어졌다.

주요 인물

  • 장수왕394년 – 491년

    고구려 제20대 왕. 평양으로 도읍을 옮기고 백제의 한성을 함락해 한강 유역을 차지했다

  • 고종1852년 – 1919년

    조선 제26대 왕이자 대한제국 첫 황제

  • 개로왕475년

    백제 제21대 왕. 장수왕의 공격으로 한성이 함락될 때 붙잡혀 죽었다

  • 신문왕692년

    문무왕의 아들, 통일 신라의 제31대 왕. 김흠돌의 난을 누르고 국학·9주 5소경·관료전으로 왕권을 굳혔다

  • 김윤후

    승려 출신 장수. 1232년 처인성에서 몽골 장수 살리타를 쏘아 죽였고, 1253년 충주성을 70여 일 지켰다

  • 태종 이방원1367년 – 1422년

    조선 제3대 왕. 두 차례 왕자의 난으로 권력을 잡고 왕권을 다졌다

  • 신립1546년 – 1592년

    임진왜란 초 삼도 순변사로 충주 탄금대에 배수진을 쳤다가 고니시 유키나가의 일본군에 패해 전사한 장수

  • 고니시 유키나가1558년 – 1600년

    일본군 제1번대를 이끌고 부산에 처음 상륙해 평양까지 올라간 장수

  • 흥선대원군1820년 – 1898년

    고종의 아버지. 섭정으로 경복궁을 다시 짓고 통상 수교를 거부했다

  • 명성황후1851년 – 1895년

    고종의 왕비. 일본 세력을 견제하다 을미사변으로 경복궁에서 시해되었다

  • 유인석1842년 – 1915년

    위정척사파 유생.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맞서 제천에서 을미의병을 일으켰고, 뒤에 연해주에서 13도 의군을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