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5세기
충주 고구려비
다른 이름: 중원 고구려비
고구려가 남한강 유역의 충주에 세운 비석. 한반도에 남은 유일한 고구려 비석으로, 고구려가 남한강 유역까지 내려와 신라에 영향력을 미쳤음을 보여 준다.

Lawinc82 · CC BY-SA 3.0 · 원본
충주 가금면(지금의 중앙탑면) 입석 마을에 서 있던 돌기둥을 1979년 조사해 고구려 비석임을 밝혔다. 높이 2m쯤 되는 네모난 돌기둥의 네 면에 글자를 새겼으나 많이 닳았다. 비문은 고구려 왕을 "고려 대왕", 신라 왕을 "동이 매금"이라 부르고, 고구려가 신라 왕과 신하들에게 의복을 내렸다고 적었다. 신라 땅 안에 고구려 군관 "신라토내당주"가 있었다는 구절도 있어, 고구려가 신라를 아래로 보며 영향력을 미쳤음을 알려 준다.
세운 때는 장수왕 때(5세기 중엽)로 보는 견해와 문자명왕 때(5세기 말)로 보는 견해 등으로 갈린다. 고구려는 475년 한성을 함락한 뒤 남한강 상류의 충주까지 차지해 국원성을 두었고, 뒤에 신라가 이곳을 빼앗아 국원소경(뒤의 중원경)으로 삼았다. 오랫동안 "중원 고구려비"라 불렸고, 국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