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진주성 전투
다른 이름: 계사년 진주성 전투
전년의 진주대첩을 갚으려는 히데요시의 명령으로 일본군 9만여 명이 진주성을 에워쌌다. 9일 만에 성이 무너지고 성 안의 군사와 백성 6만여 명이 죽었다.
강화 교섭이 이어지는 중에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92년 진주성에서 진 것을 갚으라고 명령했다. 6월 22일 가토 기요마사·고니시 유키나가 등이 이끈 일본군 9만여 명이 진주성을 에워쌌다. 명군은 오지 않았고, 성에는 창의사 김천일, 경상우병사 최경회, 충청병사 황진 등이 이끈 군사와 피란 온 백성이 있었다.
조선군은 비 속에서 아흐레를 버텼으나, 6월 28일 황진이 총탄에 맞아 죽고 29일 큰비로 무너진 동문 쪽 성벽으로 일본군이 들어왔다. 김천일과 최경회는 촉석루에서 남강에 몸을 던졌고, 실록은 성 안의 6만여 명이 죽었다고 적었다. 임진왜란에서 한 번에 가장 많은 사람이 죽은 싸움이다. 일본군은 진주를 무너뜨린 뒤 더 나아가지 않고 남해안의 왜성으로 돌아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