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분쟁1592년 5월 2–3일(음력)

한양 함락

부산에 오른 지 20일 만에 일본군이 한양에 들어왔다. 고니시 유키나가가 5월 2일 동대문으로, 가토 기요마사가 3일 남대문으로 들어왔다.

조선 기록은 고니시의 제1번대가 5월 2일 흥인문(동대문)으로, 가토의 제2번대가 3일 숭례문(남대문)으로 들어왔다고 적었다. 그래서 한양 함락을 2일로도 3일로도 쓴다. 도성을 지키던 도원수 김명원은 한강 방어를 버리고 물러났고, 일본군은 싸움 없이 성에 들어왔다.

경복궁·창덕궁·창경궁은 이미 불에 타 있었다. 왕이 떠난 뒤 성난 백성이 노비 문서가 있던 장례원과 궁궐에 불을 질렀다는 기록이 있고, 일본군이 불태웠다는 견해도 있다. 일본군은 한양을 거점으로 고니시는 평안도, 가토는 함경도, 구로다 나가마사는 황해도로 나뉘어 북쪽으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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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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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조선 · 피침국 — 선조
일본 · 침략국
관련 장소
한양, 경복궁

관련 인물

  • 고니시 유키나가1558년 – 1600년

    지휘관 · 일본군 제1번대를 이끌고 부산에 처음 상륙해 평양까지 올라간 장수

  • 가토 기요마사1562년 – 1611년

    지휘관 · 일본군 제2번대를 이끈 장수. 함경도까지 올라가 두 왕자를 사로잡았고, 정유재란 때 울산왜성에서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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