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592년 4월 30일 – 6월 22일(음력)
선조의 피란
다른 이름: 선조의 몽진, 선조 파천
충주가 무너졌다는 소식에 선조가 4월 30일 새벽 비 오는 한양을 떠났다. 개성·평양을 거쳐 압록강 가 의주까지 올라가 명에 원군을 청했다.
탄금대 패전 소식이 닿자 조정은 도읍을 지킬지 떠날지로 다투었다. 선조는 4월 29일 둘째 아들 광해군을 세자로 세우고, 30일 새벽 비를 맞으며 돈의문을 나섰다. 류성룡의 『징비록』은 이때 백성들이 길을 막고 울부짖었다고 적었다.
선조는 5월 1일 개성, 5월 7일 평양에 들어갔다. 일본군이 대동강에 이르자 6월 11일 다시 평양을 떠나 6월 22일 의주에 닿았다. 압록강을 건너 명나라로 들어가려는 뜻까지 비쳤으나 신하들이 말렸다. 광해군은 조정을 나누어 맡아(분조) 강원도·황해도를 돌며 의병과 군사를 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