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623년 3월 13일(음력)
인조반정
서인이 광해군을 몰아내고 능양군을 왕으로 세웠다(인조). 친명배금으로 돌아서며 후금과의 관계가 나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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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은 북인과 함께 정치를 이끌며 명과 후금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폈다. 그러나 이복동생 영창 대군을 죽이고 인목 대비를 서궁(경운궁)에 가둔 일(폐모살제)과 명의 은혜를 저버린 외교가 서인에게 반정의 명분이 되었다.
1623년 3월 13일 밤 김류·이귀·최명길 등 서인과 능양군이 이괄 등의 군사와 함께 창의문을 지나 창덕궁에 들어갔다. 능양군은 인목 대비의 명으로 즉위했고, 광해군은 강화도로 쫓겨났다가 뒤에 제주도로 옮겨졌다. 북인의 이이첨·정인홍 등은 처형되었다.
이후 서인이 정권을 잡고 남인 일부와 함께 정치를 이끌었다. 친명배금으로 바뀐 외교는 정묘호란을 불렀고, 공을 나누는 데 불만을 품은 이괄은 이듬해 난을 일으켰다(이괄의 난, 16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