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쿠라 사절단
다른 이름: 이와쿠라 구미 사절단, 정한론 정변
메이지 정부의 지도자 절반이 1년 9개월 동안 미국과 유럽을 돌며 불평등 조약 개정을 타진하고 서양의 제도·산업을 살폈다.

작자 미상 · Public domain · 원본
1871년 12월 이와쿠라 도모미를 대사로, 기도 다카요시·오쿠보 도시미치·이토 히로부미 등 정부 핵심과 유학생을 합쳐 100명 남짓이 요코하마를 떠났다. 미국에서 조약 개정을 꺼냈으나 거절당하자, 영국·프랑스·독일·러시아 등을 돌며 의회·공장·학교를 살피는 데 힘을 쏟았다. 1873년 9월 돌아온 이들은 국력부터 기르자며, 그 사이 남은 정부(사이고 다카모리·이타가키 다이스케 등)가 결정한 조선 사절 파견(정한론)을 뒤집었다. 사이고·이타가키는 정부를 떠났다. 조선이 1881년 일본에 보낸 조사 시찰단도 이와 같은 시찰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