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1835년 – 1908년

서태후

다른 이름: 자희 태후

함풍제의 비, 동치제의 어머니. 수렴청정으로 반세기 가까이 청의 실권을 쥐었고 무술정변을 일으켰다

함풍제의 후궁으로 동치제를 낳았다. 1861년 함풍제가 죽자 정변을 일으켜 동태후와 함께 수렴청정을 시작했고, 동치제가 일찍 죽자 조카인 광서제를 세워 다시 실권을 쥐었다. 양무운동은 허용했으나 1898년 변법이 자신의 권력을 위협하자 무술정변으로 광서제를 유폐했다. 1900년 의화단을 이용해 열강에 선전 포고했다가 시안으로 피란했고, 돌아와 광서신정을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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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의 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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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건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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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캉유웨이·량치차오가 광서제를 움직여 메이지 유신을 본보기로 입헌 군주제를 향한 개혁을 폈으나, 서태후의 무술정변으로 100여 일 만에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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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9년 – 1901년의화단 운동과 신축 조약관련자

    "부청멸양"을 내건 의화단이 교회와 철도를 공격하고 베이징의 공사관을 에워쌌다. 8개국 연합군이 베이징을 점령했고, 청은 신축 조약으로 막대한 배상금을 물고 외국 군대의 주둔을 받아들였다.

함께 나오는 인물

  • 캉유웨이1858년 – 1927년

    청의 개혁 사상가. 메이지 유신을 본보기로 입헌 군주제를 세우자는 변법자강 운동을 이끌었다

  • 량치차오1873년 – 1929년

    캉유웨이의 제자로 변법자강 운동에 참여했다. 무술정변 뒤 일본에서 신문·잡지로 계몽 운동을 폈다

  • 광서제1871년 – 1908년

    청의 11대 황제(재위 1875–1908). 캉유웨이를 등용해 변법을 폈으나 무술정변으로 유폐되었다

  • 리훙장1823년 – 1901년

    청의 북양 대신. 임오군란 뒤 조선 정책을 주도했고 이토 히로부미와 톈진 조약, 시모노세키 조약을 맺었다

이 인물이 나오는 테마

  • 동아시아의 개항과 근대화1839년 – 1901년

    아편 전쟁에서 신축 조약까지 — 서양의 함포 앞에 문을 연 청·일본·조선이 저마다 개혁에 나섰다가 서로 다른 길로 갈라진 6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