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853년 7월 8일 · 1854년 3월 31일

페리 내항과 미일 화친 조약

다른 이름: 가나가와 조약, 흑선 내항

미국의 페리 제독이 군함을 이끌고 와 개항을 요구했다. 이듬해 에도 막부는 미일 화친 조약을 맺어 시모다·하코다테를 열고, 200여 년의 쇄국을 끝냈다.

요코하마(가나가와)에 상륙하는 페리 일행 — 1854년 3월 8일, 석판화
요코하마(가나가와)에 상륙하는 페리 일행 — 1854년 3월 8일, 석판화

Wilhelm Heine · Public domain · 원본

에도 막부는 크리스트교를 막으려 나가사키에서 네덜란드·청과만 교역하는 쇄국 정책을 200년 넘게 지켰다. 태평양을 건너 청과 무역하고 고래를 잡던 미국은 일본의 항구가 필요했다. 1853년 7월 페리 제독이 증기선을 앞세운 함대(흑선)를 이끌고 에도만 입구의 우라가에 나타나 대통령의 국서를 건네고 개항을 요구했다.

1854년 3월 31일 다시 온 페리와 막부는 가나가와(요코하마)에서 미일 화친 조약을 맺었다. 시모다·하코다테를 열어 미국 배에 연료와 식량을 대고, 표류민을 돕고, 영사를 두며, 미국에 최혜국 대우를 주기로 했다. 이어 영국·러시아·네덜란드와도 비슷한 조약을 맺었다. 막부가 조정과 다이묘에게 의견을 물으면서 막부의 권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도에서 보기

1853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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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미국 · 체결국 — 대통령 프랭클린 피어스
일본 · 체결국

관련 인물

  • 매슈 페리1794년 – 1858년

    외교관 · 미국 해군 제독. 1853년 함대를 이끌고 우라가에 와서 개항을 요구하고, 이듬해 미일 화친 조약을 맺었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823년 먼로 선언
이후 사건
1858년 미일 수호 통상 조약

이 사건이 든 테마

  • 동아시아의 개항과 근대화1839년 – 1901년

    아편 전쟁에서 신축 조약까지 — 서양의 함포 앞에 문을 연 청·일본·조선이 저마다 개혁에 나섰다가 서로 다른 길로 갈라진 6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