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분쟁1866년 9월 – 10월(음력)

병인양요

천주교 박해를 구실로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점령했다. 양헌수가 정족산성에서 물리쳤고, 프랑스군은 외규장각 도서를 약탈해 물러났다.

강화도 앞바다의 프랑스 함대 — 1866년
강화도 앞바다의 프랑스 함대 — 1866년

작자 미상 · Public domain · 원본

1866년 초 병인박해로 프랑스 선교사 9명과 많은 신자가 처형되었다. 탈출한 리델 신부가 톈진의 프랑스 함대에 알리자, 로즈 제독은 먼저 군함 3척으로 한강을 거슬러 양화진·서강까지 올라와 물길을 살폈다.

9월 로즈는 군함 7척으로 다시 와 강화부를 점령했다. 한성근이 문수산성에서, 양헌수가 정족산성에서 프랑스군을 물리치자, 프랑스군은 강화 행궁과 외규장각을 불태우고 의궤 등 도서와 은괴를 빼앗아 물러갔다.

이 일로 흥선 대원군은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더 굳게 했다. 1868년 오페르트 도굴 사건, 1871년 신미양요가 뒤를 이었다. 약탈된 외규장각 의궤는 2011년 영구 대여 형식으로 돌아왔다.

지도에서 보기

1866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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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조선 · 피침국 — 고종
프랑스 · 침공국
관련 장소
정족산성, 강화부

관련 인물

  • 양헌수1816년 – 1888년

    지휘관 · 병인양요 때 정족산성에서 프랑스군을 물리친 장수

  • 로즈1812년 – 1883년

    지휘관 · 프랑스 극동 함대 사령관. 병인양요 때 강화도를 침공했다

  • 흥선대원군1820년 – 1898년

    관련자 · 고종의 아버지. 섭정으로 경복궁을 다시 짓고 통상 수교를 거부했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866년 제너럴셔먼호 사건
이후 사건
1868년 오페르트 도굴 사건

이 사건이 든 테마

  • 동아시아의 개항과 근대화1839년 – 1901년

    아편 전쟁에서 신축 조약까지 — 서양의 함포 앞에 문을 연 청·일본·조선이 저마다 개혁에 나섰다가 서로 다른 길로 갈라진 60년

  • 인쇄술과 기록 유산751년 – 2011년

    무구정광대다라니경에서 5·18 기록물까지 — 목판·금속 활자 인쇄의 발달과 세계 기록 유산이 된 기록들

  • 강화도기원전 1000년 – 2011년

    고인돌에서 강화도 조약까지 — 고려의 임시 수도에서 개항의 무대까지, 나라가 위기 때마다 기댄 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