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개혁
다른 이름: 갑오경장
군국기무처를 세우고 신분제와 과거제를 없애는 등 정치·사회 전반을 고쳤다. 일본의 간섭 아래 김홍집 내각이 이끌었다.

작자 미상 · Public domain · 원본
동학 농민군의 개혁 요구가 커지자 조선 정부는 교정청을 두어 스스로 개혁하려 했다. 그러나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하고 흥선 대원군을 앞세운 뒤 김홍집 내각을 세웠고, 초정부적 회의 기구인 군국기무처가 개혁을 이끌었다(1차 갑오개혁).
청의 연호 대신 개국 기년을 쓰고, 궁내부를 두어 왕실 사무와 정부 사무를 나누었으며, 6조를 8아문으로 고치고 과거제를 없앴다. 재정은 탁지아문으로 일원화하고 은본위 화폐 제도와 조세의 금납화, 도량형 통일을 시행했다. 공사 노비법을 혁파해 신분제를 없애고, 연좌제를 폐지하며, 조혼을 금지하고 과부의 재가를 허용했다.
청일 전쟁에서 우세해진 일본은 군국기무처를 없애고 김홍집·박영효 연립 내각을 세워 홍범 14조를 바탕으로 2차 개혁을 밀었고, 을미사변 뒤 을미개혁(3차)이 이어졌다. 동학 농민군의 요구를 일부 받아들인 근대적 개혁이었으나, 일본의 간섭 아래 진행되고 군사 개혁에 소홀해 민중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