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 농민 운동
다른 이름: 동학 농민 혁명, 동학 농민 전쟁, 갑오 농민 전쟁
전봉준이 이끄는 농민군이 탐관오리와 외세에 맞서 일어났다. 청일 전쟁의 계기가 되었다.

Murakami Tenshin (村上天眞) · Public domain · 원본
개항 뒤 일본으로 쌀이 빠져나가고 지방관의 수탈이 겹쳐 농민의 삶이 어려웠다. 동학교도들은 교조 신원 운동을 벌였고, 보은 집회에서는 "척왜양창의"를 내걸어 정치 운동으로 나아갔다.
1월 고부 군수 조병갑의 수탈에 맞선 고부 농민 봉기로 시작되었다. 안핵사 이용태가 봉기 참가자를 탄압하자 3월 전봉준·손화중·김개남이 무장에서 다시 일어나 백산에 모였다(1차 봉기, 백산 봉기). 농민군은 "보국안민"과 "제폭구민"을 내세워 황토현과 황룡촌에서 관군을 이기고 4월 전주성을 점령했다. 청군과 일본군이 들어오자 5월 정부와 전주 화약을 맺고 집강소를 두어 폐정 개혁을 실천했다.
일본이 경복궁을 점령하고 청일 전쟁을 일으키자 농민군은 9월 일본을 몰아내려 다시 일어났다(2차 봉기). 남접과 손병희의 북접이 논산에서 합쳤으나 11월 공주 우금치에서 관군과 일본군에 크게 졌고, 전봉준은 순창에서 붙잡혀 이듬해 처형되었다. 반봉건 요구는 갑오개혁에 일부 반영되었고, 남은 농민군은 의병 투쟁에 가담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