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894년 4월 27일 – 5월 7일(음력)
전주성 점령과 전주 화약
농민군이 전주성을 점령하자 정부는 청에 군대를 청했고, 일본도 군대를 보냈다. 두 나라 군대의 철수와 폐정 개혁을 조건으로 농민군은 정부와 화약을 맺고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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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군은 4월 27일 전라 감영이 있는 전주성에 들어갔다. 청군이 아산에 오자 일본은 톈진 조약을 내세워 인천에 군대를 보냈다. 외국 군대가 들어오자 농민군은 폐정 개혁을 약속받고 화약을 맺었다.
농민군은 전라 감사 김학진과 협의해 전라도 각 고을에 집강소를 두고 스스로 개혁을 실천했다. 오지영의 『동학사』에 실린 폐정 개혁안 12개조에는 탐관오리 처벌, 노비 문서 소각, 칠반천인의 대우 개선, 청상과부의 재가 허용, 무명잡세 폐지, 왜와 통하는 자 처벌, 토지의 평균 분작이 들어 있다(12개조는 『동학사』에만 있어 그대로 믿기 어렵다는 견해도 있다).
정부는 교정청을 두어 스스로 개혁하려 했으나, 일본은 철수를 거부하고 6월 21일(양력 7월 23일) 경복궁을 점령한 뒤 청일 전쟁을 일으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