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후백제의 도읍 완산주에서 조선 왕실의 본향으로 — 실록을 지켜 내고 동학 농민군이 성을 차지한 곳

후백제의 도읍 완산주에서 조선 왕실의 본향으로 — 실록을 지켜 내고 동학 농민군이 성을 차지한 곳

신문왕이 전국을 9주로 나누고 5소경을 두어 통일 신라의 지방 제도를 완성했다.
신라의 군인이던 견훤이 무진주(광주)를 차지한 뒤 900년 완산주(전주)에 도읍하고 후백제를 세웠다.
맏아들 신검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금산사에 갇혔던 견훤이 탈출해 고려에 귀순했다.
태종이 조선 왕실의 본향 전주에 태조 이성계의 어진(초상화)을 모시는 전각을 세웠다. 세종 때 경기전이라 이름 붙였다.
태종 때 태조실록을 엮으면서 왕이 죽으면 그 왕의 실록을 편찬하는 일이 시작되었다. 태조부터 철종까지 472년을 편년체로 적었다.
동인 정여립이 반역을 꾀했다는 고변으로 그가 자결하고, 서인 정철이 옥사를 맡아 동인 1천여 명이 화를 입었다.
농민군이 전주성을 점령하자 정부는 청에 군대를 청했고, 일본도 군대를 보냈다. 두 나라 군대의 철수와 폐정 개혁을 조건으로 농민군은 정부와 화약을 맺고 물러났다.
견훤의 맏아들. 아버지를 금산사에 가두고 후백제의 왕이 되었으나, 936년 일리천 전투에서 져 고려에 항복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