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894년 7월 16일

영일 통상 항해 조약 (일본의 불평등 조약 개정)

다른 이름: 조약 개정, 치외 법권 철폐

일본이 영국과 새 조약을 맺어 영사 재판권(치외 법권)을 없앴다. 1911년에는 관세 자주권도 되찾아 불평등 조약 개정을 마쳤다.

조약 개정을 노린 서구화 정책의 상징 로쿠메이칸 — 도쿄, 1883년 문을 열었다
조약 개정을 노린 서구화 정책의 상징 로쿠메이칸 — 도쿄, 1883년 문을 열었다

Rijksmuseum · Public domain · 원본

이와쿠라 사절단 이래 일본은 조약 개정을 최대 외교 과제로 삼았다. 이노우에 가오루는 로쿠메이칸에서 무도회를 열며 서구화를 과시했고, 외국인 판사를 두자는 안이 반발을 사 실패를 거듭했다. 헌법과 법전을 갖춘 뒤 러시아의 남하를 걱정하던 영국이 응해, 외무대신 무쓰 무네미쓰 때인 1894년 7월 16일 런던에서 영일 통상 항해 조약을 맺었다. 영사 재판권이 1899년에 없어졌고, 1911년 고무라 주타로 때 관세 자주권도 되찾았다. 조약은 청일 전쟁이 터지기 9일 전에 맺어졌다.

지도에서 보기

1894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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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일본 · 체결국 — 메이지 일왕
영국 · 체결국

관련 인물

  • 무쓰 무네미쓰1844년 – 1897년

    외교관 · 일본의 외무대신(1892–1896). 영국과의 조약 개정으로 치외 법권을 없앴고, 청일 전쟁과 시모노세키 조약을 이끌었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889년 방곡령
이후 사건
1894년 청일 전쟁

이 사건이 든 테마

  • 동아시아의 개항과 근대화1839년 – 1901년

    아편 전쟁에서 신축 조약까지 — 서양의 함포 앞에 문을 연 청·일본·조선이 저마다 개혁에 나섰다가 서로 다른 길로 갈라진 6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