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879년 3월 27일 · 4월 4일

류큐 처분

다른 이름: 오키나와현 설치, 류큐 병합

일본이 청과 사쓰마에 함께 속해 있던 류큐 왕국을 없애고 오키나와현을 두었다. 청 중심 조공 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한 신호였다.

동쪽에서 본 슈리성 — 붉은 동그라미는 1876년부터 머문 일본군(구마모토 진대 오키나와 분견대)의 주둔지, 와타나베 시게쓰나 『류큐 만록』(1879)
동쪽에서 본 슈리성 — 붉은 동그라미는 1876년부터 머문 일본군(구마모토 진대 오키나와 분견대)의 주둔지, 와타나베 시게쓰나 『류큐 만록』(1879)

渡辺重綱 著『琉球漫録』(1879年) · Public domain · 원본

류큐 왕국은 1609년 사쓰마의 침공을 받은 뒤 중국(명·청)에 조공하면서도 사쓰마의 지배를 받는 양속 상태였다. 메이지 정부는 1872년 류큐를 번으로 삼고, 타이완 출병 뒤 청에 대한 조공을 금했다. 1879년 3월 마쓰다 미치유키가 군대·경찰을 이끌고 슈리성을 넘겨받았고, 4월 4일 오키나와현을 두었으며 국왕 쇼타이는 도쿄로 옮겨졌다. 청은 반발했지만 막지 못했다. 위기를 느낀 청은 조선이 서양과 수교해 일본·러시아를 견제하게 하려 했고, 황준헌의 『조선책략』도 이 무렵 나왔다.

지도에서 보기

1879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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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일본 · 병합국 — 메이지 일왕
류큐 · 병합됨
청 — 광서제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877년 세이난 전쟁

이 사건이 든 테마

  • 동아시아의 개항과 근대화1839년 – 1901년

    아편 전쟁에서 신축 조약까지 — 서양의 함포 앞에 문을 연 청·일본·조선이 저마다 개혁에 나섰다가 서로 다른 길로 갈라진 6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