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명과 일본의 무사 정권
문치주의의 송이 요·서하·금에 세폐를 주며 강남 개발과 성리학을 꽃피우고, 원을 몰아낸 명이 황제 독재와 해금·조공 체제로 동아시아 질서를 다시 짠 시대 — 일본은 가마쿠라·무로마치 막부의 무사 정권을 거쳐 전국 시대로, 한반도는 고려에서 조선으로

문치주의의 송이 요·서하·금에 세폐를 주며 강남 개발과 성리학을 꽃피우고, 원을 몰아낸 명이 황제 독재와 해금·조공 체제로 동아시아 질서를 다시 짠 시대 — 일본은 가마쿠라·무로마치 막부의 무사 정권을 거쳐 전국 시대로, 한반도는 고려에서 조선으로

| 구분 | 중국 (송·원·명) | 일본 | 고려·조선 |
|---|---|---|---|
| 지배층 | 과거 출신 사대부 (문치주의) | 무사 — 쇼군과 고케닌 | 문벌 귀족 → 무신 → 신진 사대부 |
| 북방 민족 | 요·서하·금에 세폐 주고 화의 | 몽골의 두 차례 침입 격퇴 | 거란 격퇴(귀주대첩), 금에 사대 |
| 무인 정권 | 절도사 억제, 금군은 황제 직속 | 가마쿠라 막부 (1185 / 1192) | 무신 정변(1170), 최씨 정권 |
| 경제·기술 | 강남 개발, 교자, 나침반·화약·활자 | 송전 유입으로 화폐 경제 | 벽란도, 상감 청자, 금속 활자 |
| 사상·종교 | 주희의 성리학 집대성 | 가마쿠라 신불교 (정토종·선종) | 안향의 성리학 전래 → 조선의 이념 |
| 몽골 | 금·남송 멸망, 원 건국(1271) | 여원 연합군 격퇴, 막부 흔들림 | 40년 항쟁 뒤 원 간섭기 |
| 14세기 교체 | 홍건적의 난 → 명 건국(1368) | 무로마치 막부, 남북조 통일(1392) | 조선 건국(1392) |
| 왜구 | 해금, 연해 방비 | 남북조 혼란 속 쓰시마·이키 근거지 | 홍산·진포·황산 대첩, 쓰시마 정벌 |
| 대외 무역 | 해금 — 조공 무역만 허용 | 감합 무역 (1404) | 사대교린, 3포 개항·계해약조 |
| 도읍 | 카이펑 → 임안 → 대도 → 난징 → 베이징 | 가마쿠라 → 교토 무로마치 | 개경 → 한양 (1394) |
| 15세기 후반 | 토목의 변(1449) 뒤 북방 수세 | 오닌의 난(1467) → 전국 시대 | 경국대전 완성, 3포 왜란(1510) |
후주의 장수 조광윤(송 태조)이 960년 진교의 변으로 송을 세우고, 절도사의 군권을 거두어 황제 직속으로 하고 과거로 뽑은 문관을 우대하는 문치주의를 폈다. 979년 중국 본토를 다시 통일했다.
거란(요)이 993년부터 1019년까지 세 차례 고려를 침입했다. 고려는 서희의 외교와 강감찬의 귀주대첩으로 이를 물리쳤다.
1004년 거란(요)의 성종이 대군을 이끌고 황허까지 내려오자, 송 진종이 전주로 나가 화약을 맺었다. 송이 해마다 비단과 은을 주는 대신 두 나라는 형제의 나라로 120년 가까이 평화를 지켰다.
강감찬이 이끄는 고려군이 귀주에서 거란의 10만 대군을 크게 무찔렀다.
송 대에는 강남이 개발되어 경제의 중심이 남쪽으로 옮겨 가고, 상업 도시와 지폐(교자·회자)가 생겼다. 나침반·화약·활판 인쇄술이 실용화되어 세계로 퍼졌다.
탕구트족의 이원호가 1038년 황제를 칭하고 대하(서하)를 세웠다. 서하 문자를 만들고 송과 싸워 1044년 세폐를 받는 화의를 맺었으며, 동서 교역로인 허시 회랑을 쥐었다.
송 신종이 1069년 왕안석을 기용해 청묘법·모역법·시역법·균수법·보갑법·보마법 같은 신법으로 재정과 군사를 다시 세우려 했다. 사마광 등 구법당의 반대로 신·구법당의 당쟁이 이어졌다.
윤관이 별무반 17만을 이끌고 여진을 몰아낸 뒤 동북 지방에 9성을 쌓았다. 여진이 거듭 돌려 달라고 하고 지키기 어려워 1년여 만에 돌려주었다.
여진 완안부의 아구다가 요에 맞서 일어나 1115년 금을 세웠다. 맹안·모극제로 군대를 짜고 송과 손잡아 1125년 요를 멸망시켰다.
인종의 외할아버지이자 장인인 이자겸이 척준경과 함께 궁궐을 불태우고 왕을 가두었다. 인종이 척준경을 회유해 이자겸을 몰아냈다.
금이 카이펑을 함락하고 1127년 송의 휘종·흠종을 비롯한 황족을 북으로 끌고 갔다(정강의 변). 흠종의 아우 고종이 남쪽에서 즉위해 남송을 이었고, 1141년 회수를 경계로 금과 화의를 맺었다.
서경 세력인 묘청·정지상이 서경 천도와 칭제건원·금국 정벌을 주장하다 받아들여지지 않자 서경에서 난을 일으켰다. 김부식이 이끈 관군에 1년 만에 진압되었다.
문신에게 차별받던 정중부·이의방·이고 등 무신이 보현원에서 정변을 일으켜 문신을 죽이고 의종을 몰아냈다. 이후 100년 동안 무신 정권이 이어졌다.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겐페이 전쟁에서 다이라씨를 무너뜨리고 1185년 슈고·지토를 둘 권한을 얻었으며, 1192년 정이대장군이 되었다. 쇼군과 고케닌이 땅과 충성으로 맺어진 무사 정권(막부)이 일본을 700년 가까이 다스리는 시작이었다.
남송의 주희가 북송 유학자들의 학문을 모아 이기론과 성즉리를 바탕으로 성리학(주자학)을 집대성하고 『사서집주』를 펴냈다. 원·명의 과거 교재가 되었고 고려 말 한반도에 전해져 조선의 통치 이념이 되었다.
테무친이 쿠릴타이에서 칭기즈 칸으로 추대되었다. 몽골 제국은 역사상 가장 넓은 육상 제국이 되었다.
칭기즈 칸이 여진족의 금을 쳐서 화북을 휩쓸었다. 오고타이 칸이 남송과 손잡아 1234년 금을 멸망시켰다.
원군이 양양을 함락하고 남송의 수도 임안을 항복시켰다. 1279년 애산 바다에서 남송의 마지막 함대가 무너지고, 중국 전체가 처음으로 북방 유목 민족의 지배를 받았다.
쿠빌라이가 나라 이름을 대원(大元)으로 정하고 대도(오늘의 베이징)를 수도로 삼았다. 몽골 제국은 원과 여러 칸국으로 나뉘었다.
원이 고려를 앞세워 두 차례 일본을 쳤으나, 모두 태풍을 만나 실패했다. 고려는 배와 군사·식량을 대느라 큰 부담을 졌다.
충렬왕 때 안향이 원에서 성리학을 들여왔다. 이제현·이색을 거쳐 정몽주·정도전 등 신진 사대부의 사상이 되었다.
가마쿠라 막부가 무너진 뒤 아시카가 다카우지가 고다이고 일왕과 갈라서 1336년 교토에 북조를 세우고 1338년 쇼군이 되었다. 요시노의 남조와 맞선 남북조의 내란은 1392년 아시카가 요시미쓰가 통일할 때까지 이어졌다.
1350년 무렵부터 왜구가 해마다 고려의 해안과 내륙을 노략질했다. 최영·최무선·이성계·정지 등이 이를 물리치며 신흥 무인 세력이 자랐다.
원·명 교체기에 공민왕이 친원 세력을 숙청하고 쌍성총관부를 되찾는 반원 개혁과, 신돈을 앞세워 권문세족을 누르는 왕권 강화 개혁을 펼쳤다.
원 말 한족 반란군인 홍건적이 두 차례 고려에 쳐들어왔다. 2차 침입 때 개경이 함락되어 공민왕이 복주(안동)까지 피란했다.
원 말 홍건적의 난 속에서 세력을 키운 주원장이 1368년 난징에서 황제가 되어 명을 세웠다. 같은 해 명군이 대도를 함락하자 원 황실은 몽골 고원으로 물러나 북원이 되었다.
홍무제는 1380년 승상과 중서성을 없애 6부를 황제 직속으로 두고, 이갑제·어린도책·부역황책으로 농촌을 다스렸다. 6유로 백성을 가르치고 해금으로 민간의 바다 무역을 막았다.
명이 철령 이북의 땅을 내놓으라 하자 우왕과 최영이 요동 정벌을 일으켰으나,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군대를 돌려 최영을 몰아내고 권력을 잡았다.
이성계가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세웠다. 1394년 한양으로 도읍을 옮겼다.
홍무제가 죽은 뒤 건문제가 숙부들의 힘을 줄이자, 연왕 주체가 1399년 군사를 일으켜(정난의 변) 1402년 난징을 함락하고 영락제가 되었다. 그는 1421년 자기 근거지인 베이징으로 도읍을 옮겼다.
아시카가 요시미쓰가 명에서 "일본 국왕"으로 책봉받고 왜구를 단속하는 대가로, 1404년부터 감합(확인용 부절)을 지닌 배만 명과 조공 무역을 하게 되었다.
영락제의 명으로 환관 정화가 1405년부터 1433년까지 일곱 차례 대함대를 이끌고 동남아시아·인도·페르시아만·아라비아·동아프리카까지 항해해 명의 위세를 떨치고 조공국을 늘렸다.
왜구의 근거지를 치려고 이종무가 병선 200여 척으로 쓰시마를 공격했다. 뒤에 계해약조로 교역을 허락했다.
오키나와의 세 나라(삼산)로 나뉘어 있던 류큐를 주잔의 쇼하시가 1429년 통일하고 슈리를 도읍으로 삼았다. 류큐는 명의 조공국으로서 명·일본·조선·동남아시아를 잇는 중계 무역으로 번영했다.
세종 때 쓰시마 도주와 약조를 맺어 일본과의 교역을 세견선 1년 50척, 세사미두 200석으로 제한했다.
1449년 오이라트의 에센이 쳐들어오자 명의 정통제가 환관 왕진의 권유로 친정에 나섰다가 토목보에서 크게 지고 사로잡혔다. 우겸이 새 황제를 세워 베이징을 지켰고, 명은 이후 북방에서 수세로 돌아섰다.
쇼군 아시카가 요시마사의 후계 다툼에 유력 슈고 가문들의 다툼이 얽혀 1467년부터 11년 동안 교토에서 오닌의 난이 벌어졌다. 막부의 권위가 무너지고, 하극상 속에 전국 다이묘가 다투는 전국 시대가 열렸다.

무로마치 막부의 제3대 쇼군(재위 1368–1394). 1392년 남북조를 통일하고, 명에서 "일본 국왕"으로 책봉받아 감합 무역을 열었다. 금각을 세웠다
명의 건국자(재위 1368–1398). 빈농 출신으로 홍건적에 들어가 세력을 키웠고, 승상제를 없애고 이갑제·해금으로 황제 중심의 나라를 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