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분쟁1449년 9월

토목의 변

다른 이름: 토목보의 변

1449년 오이라트의 에센이 쳐들어오자 명의 정통제가 환관 왕진의 권유로 친정에 나섰다가 토목보에서 크게 지고 사로잡혔다. 우겸이 새 황제를 세워 베이징을 지켰고, 명은 이후 북방에서 수세로 돌아섰다.

명 영종 정통제의 좌상 — 타이베이 국립 고궁 박물원
명 영종 정통제의 좌상 — 타이베이 국립 고궁 박물원

작자 미상 · Public domain · 원본

영락제 뒤 몽골 고원에서는 서쪽의 오이라트가 강해져, 에센이 몽골 여러 부족을 묶었다. 조공 무역의 조건을 두고 명과 다투던 에센이 1449년 쳐들어오자, 젊은 정통제는 환관 왕진의 권유로 50만이라 불린 대군을 이끌고 친정에 나섰다. 그러나 준비 없이 나갔다가 돌아오던 길에 베이징 서북쪽의 토목보에서 포위되어 크게 지고 사로잡혔다.

병부 시랑 우겸은 남쪽으로 옮기자는 의견을 물리치고 황제의 아우를 경태제로 세워 베이징을 지켜 냈다. 풀려나 돌아온 정통제는 1457년 정변으로 다시 즉위했다. 토목의 변 뒤 명은 몽골 원정을 그만두고 수비로 돌아서, 오늘 남아 있는 벽돌 만리장성의 대부분을 이후 쌓았다.

지도에서 보기

1449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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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명 · 패전국 — 정통제 → 경태제
관련 장소
토목보, 베이징

관련 인물

  • 정통제 (명 영종)1427년 – 1464년

    군주 · 명의 황제(재위 1435–1449, 1457–1464). 1449년 오이라트를 치러 친정했다가 토목보에서 사로잡혔고, 돌아와 1457년 다시 즉위했다(천순제)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433년 4군 6진 개척
이후 사건
1550년 명의 북로남왜

이 사건이 든 테마

  • 송·명과 일본의 무사 정권960년 – 1500년

    문치주의의 송이 요·서하·금에 세폐를 주며 강남 개발과 성리학을 꽃피우고, 원을 몰아낸 명이 황제 독재와 해금·조공 체제로 동아시아 질서를 다시 짠 시대 — 일본은 가마쿠라·무로마치 막부의 무사 정권을 거쳐 전국 시대로, 한반도는 고려에서 조선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