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의 경제 발전과 과학 기술
다른 이름: 3대 발명, 교자, 참파벼
송 대에는 강남이 개발되어 경제의 중심이 남쪽으로 옮겨 가고, 상업 도시와 지폐(교자·회자)가 생겼다. 나침반·화약·활판 인쇄술이 실용화되어 세계로 퍼졌다.

Zhang Zeduan · Public domain · 원본
송 대에는 가뭄에 강하고 빨리 자라는 참파벼(점성도)가 보급되고 창장강 하류의 저습지가 논으로 개간되어, 남송 때는 "소호(쑤저우·후저우)가 익으면 천하가 넉넉하다"는 말이 생겼다. 경제의 중심이 강남으로 옮겨 간 것이다. 도시에서는 시간·장소의 제한 없이 장사할 수 있게 되고, 상인 조합인 행과 수공업자 조합인 작이 생겼으며, 쓰촨에서 상인들이 쓰던 어음 교자를 1023년 나라가 맡아 발행했다(남송의 회자). 광저우·취안저우·명주에 시박사를 두어 해상 무역을 관리했다.
과학 기술도 크게 발달했다. 필승이 진흙으로 활자를 만든 일이 심괄의 『몽계필담』에 전하고, 나침반은 12세기 초 항해에 쓰였으며, 화약은 화창·화포 같은 무기로 쓰였다. 이 세 가지는 이슬람 세계를 거쳐 유럽에 전해져 뒤의 대항해·종교 개혁·근대 전쟁에 영향을 주었다. 징더전의 자기, 서민이 즐긴 사(詞)와 잡극도 이 시대의 것이다.
송 상인은 고려의 벽란도에도 드나들었고, 고려는 송의 자기 기술을 받아들여 고려청자를 발전시켰다. 고려의 금속 활자(상정고금예문, 직지심체요절)도 이런 인쇄 문화의 흐름 속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