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민왕의 개혁 정치
원·명 교체기에 공민왕이 친원 세력을 숙청하고 쌍성총관부를 되찾는 반원 개혁과, 신돈을 앞세워 권문세족을 누르는 왕권 강화 개혁을 펼쳤다.

작자 미상 · Public domain · 원본
반원 자주 정책: 1356년 기황후의 오빠 기철 등 친원 세력을 숙청하고, 정동행성 이문소를 없앴으며, 원의 연호를 쓰지 않고 관제를 옛날로 되돌렸다. 쌍성총관부를 무력으로 되찾고, 변발·호복 같은 몽골풍을 금지했다.
왕권 강화 정책: 즉위 초 인사권을 쥐고 있던 정방을 없앴다. 1365년 승려 신돈을 등용해 전민변정도감을 두고 권문세족이 빼앗은 토지와 노비를 되돌렸다. 성균관을 다시 세워(1367) 유학 교육을 강화하고 과거로 신진 사대부를 등용했다.
그러나 권문세족의 반발과 홍건적·왜구의 거듭된 침입으로 개혁은 힘을 잃었다. 신돈이 1371년 제거되고 공민왕이 1374년 시해되면서 개혁은 중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