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351 – 1374년 (재위)

공민왕의 개혁 정치

원·명 교체기에 공민왕이 친원 세력을 숙청하고 쌍성총관부를 되찾는 반원 개혁과, 신돈을 앞세워 권문세족을 누르는 왕권 강화 개혁을 펼쳤다.

공민왕 어진 — 화장사에 모셨던 초상의 1916년 유리건판 사진
공민왕 어진 — 화장사에 모셨던 초상의 1916년 유리건판 사진

작자 미상 · Public domain · 원본

반원 자주 정책: 1356년 기황후의 오빠 기철 등 친원 세력을 숙청하고, 정동행성 이문소를 없앴으며, 원의 연호를 쓰지 않고 관제를 옛날로 되돌렸다. 쌍성총관부를 무력으로 되찾고, 변발·호복 같은 몽골풍을 금지했다.

왕권 강화 정책: 즉위 초 인사권을 쥐고 있던 정방을 없앴다. 1365년 승려 신돈을 등용해 전민변정도감을 두고 권문세족이 빼앗은 토지와 노비를 되돌렸다. 성균관을 다시 세워(1367) 유학 교육을 강화하고 과거로 신진 사대부를 등용했다.

그러나 권문세족의 반발과 홍건적·왜구의 거듭된 침입으로 개혁은 힘을 잃었다. 신돈이 1371년 제거되고 공민왕이 1374년 시해되면서 개혁은 중단되었다.

지도에서 보기

1351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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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고려 — 공민왕
원 — 순제 토곤 테무르
관련 장소
송악 (개성)

관련 인물

  • 공민왕1330년 – 1374년

    주도자 · 고려 제31대 왕. 기철 일파를 없애고 쌍성총관부를 되찾는 반원 개혁과, 신돈을 앞세운 개혁을 폈다

  • 기철1356년

    관련자 · 원 순제의 황후가 된 기황후의 오빠. 원의 힘을 업고 권세를 부리다 공민왕에게 숙청되었다

  • 기황후

    관련자 · 공녀로 원에 가서 순제의 황후가 된 고려 여인. 오빠 기철 등 친원 세력이 그 힘을 업고 권세를 부렸다

  • 신돈1371년

    참여자 · 공민왕이 등용한 승려. 전민변정도감을 두어 권문세족이 빼앗은 땅과 노비를 되돌렸다

  • 이색1328년 – 1396년

    참여자 · 고려 말의 성리학자. 공민왕 때 성균관 대사성으로 정몽주·정도전 등을 길러 냈다

하위 사건 2건

  1. 1

    공민왕이 유인우 등을 보내 쌍성총관부를 공격해, 99년 만에 철령 이북의 땅을 되찾았다. 이자춘·이성계 부자가 안에서 호응했다.

  2. 2

    공민왕이 등용한 신돈이 전민변정도감을 두어, 권문세족이 불법으로 빼앗은 토지를 주인에게 돌려주고 억울하게 노비가 된 사람을 양인으로 풀어 주었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350년 황주 성불사 응진전
이후 사건
1359년 홍건적의 침입

관련 작품

  • 방송: 벌거벗은 한국사 제48회 「개혁군주 공민왕은 왜 원나라 공주와 사랑에 빠졌나」방송 · 2023 · 이명미 · tvN STORY

이 사건이 든 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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