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감찬
거란의 3차 침입 때 상원수로 귀주대첩을 이끌었다. 이후 개경에 나성을 쌓자고 건의했다
1018년 소배압이 10만 대군으로 쳐들어오자, 흥화진에서 쇠가죽으로 막아 둔 냇물을 터뜨려 적을 무찔렀다. 개경 가까이 왔다가 물러나는 거란군을 1019년 귀주에서 크게 무찔렀다(귀주대첩). 전쟁 뒤 고려·송·거란 사이에 세력 균형이 이루어졌고, 그의 건의로 1029년 개경 둘레에 나성을 쌓았다.
거란의 3차 침입 때 상원수로 귀주대첩을 이끌었다. 이후 개경에 나성을 쌓자고 건의했다
1018년 소배압이 10만 대군으로 쳐들어오자, 흥화진에서 쇠가죽으로 막아 둔 냇물을 터뜨려 적을 무찔렀다. 개경 가까이 왔다가 물러나는 거란군을 1019년 귀주에서 크게 무찔렀다(귀주대첩). 전쟁 뒤 고려·송·거란 사이에 세력 균형이 이루어졌고, 그의 건의로 1029년 개경 둘레에 나성을 쌓았다.
거란(요)이 993년부터 1019년까지 세 차례 고려를 침입했다. 고려는 서희의 외교와 강감찬의 귀주대첩으로 이를 물리쳤다.
강감찬이 이끄는 고려군이 귀주에서 거란의 10만 대군을 크게 무찔렀다.
각색한 작품(영화·드라마·소설)은 실제 역사와 다를 수 있습니다.
문치주의의 송이 요·서하·금에 세폐를 주며 강남 개발과 성리학을 꽃피우고, 원을 몰아낸 명이 황제 독재와 해금·조공 체제로 동아시아 질서를 다시 짠 시대 — 일본은 가마쿠라·무로마치 막부의 무사 정권을 거쳐 전국 시대로, 한반도는 고려에서 조선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