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강의 변과 남송
다른 이름: 정강의 난, 소흥 화의, 남송
금이 카이펑을 함락하고 1127년 송의 휘종·흠종을 비롯한 황족을 북으로 끌고 갔다(정강의 변). 흠종의 아우 고종이 남쪽에서 즉위해 남송을 이었고, 1141년 회수를 경계로 금과 화의를 맺었다.

작자 미상 · Public domain · 원본
해상의 맹으로 요를 함께 친 송은 약속한 물자를 제대로 보내지 않고 금에 맞서는 세력을 끌어들이다가 금의 침공을 불렀다. 휘종은 황위를 아들 흠종에게 넘겼으나, 금군은 1127년 1월(음력 1126년 말) 수도 카이펑을 함락하고 그해 봄 두 황제와 황족·관리 3천여 명을 북으로 끌고 갔다. 연호를 따서 정강의 변이라 하며, 이로써 북송이 끝났다.
흠종의 아우 조구(고종)는 1127년 남경 응천부에서 즉위했고, 금군에 쫓겨 남쪽을 떠돌다 임안(항저우)을 도읍으로 삼았다(남송). 악비 같은 장수들이 북벌로 옛 땅을 되찾으려 했으나, 재상 진회는 화의를 밀어 1141년 소흥 화의를 맺었다. 회수를 경계로 하고 송이 금에 신하의 예를 갖추며 해마다 은과 비단을 보내는 조건이었고, 악비는 이듬해 처형되었다.
남송은 북쪽 땅을 잃었으나 강남의 경제력으로 번영해 주희의 성리학 같은 문화가 꽃피었다. 고려는 금에 사대하는 한편 남송과도 상인을 통해 교류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