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희의 성리학 집대성
다른 이름: 주자학, 성리학, 사서집주
남송의 주희가 북송 유학자들의 학문을 모아 이기론과 성즉리를 바탕으로 성리학(주자학)을 집대성하고 『사서집주』를 펴냈다. 원·명의 과거 교재가 되었고 고려 말 한반도에 전해져 조선의 통치 이념이 되었다.

Unknown Chinese artist · Public domain · 원본
송 대의 유학자들은 불교·도교의 철학에 맞서 우주와 인간 본성을 설명하는 새 유학을 세우려 했다. 주돈이·장재·정호·정이의 학문을 이은 주희는 만물이 이(理, 원리)와 기(氣, 질료)로 이루어졌다는 이기론, 사람의 본성이 곧 이라는 성즉리,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따져 앎에 이르는 격물치지를 내세웠다. 『대학』·『중용』·『논어』·『맹자』를 사서로 높여 주석한 『사서집주』를 1190년 펴냈고, 백록동 서원을 다시 일으켜 서원 교육의 본보기를 만들었다.
마음이 곧 이라는 육구연(심즉리)과의 논쟁, 대의명분과 화이론의 강조도 성리학의 특징이다. 생전에는 위학으로 몰려 탄압을 받았으나, 원이 1313년 과거의 표준 해석으로 삼고 명이 『사서대전』·『성리대전』을 편찬하면서 동아시아의 관학이 되었다.
고려 말 충렬왕 때 안향이 원에서 성리학을 들여왔고, 신진 사대부가 이를 바탕으로 조선을 세웠다. 조선은 성리학을 통치 이념으로 삼아 주자가례를 보급하고 서원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