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
서경 세력인 묘청·정지상이 서경 천도와 칭제건원·금국 정벌을 주장하다 받아들여지지 않자 서경에서 난을 일으켰다. 김부식이 이끈 관군에 1년 만에 진압되었다.
이자겸의 난 뒤 인종은 개혁을 꾀했다. 서경 출신의 묘청·정지상은 풍수지리설을 내세워 "개경은 땅의 기운이 다했고 서경은 길지"라며 도읍을 옮기고, 왕을 황제라 부르고 독자 연호를 쓰며(칭제건원), 금을 정벌하자고 했다. 서경에 대화궁까지 지었으나, 김부식 등 개경 문벌 귀족이 유교 사대론을 내세워 반대했다.
1135년 1월 묘청은 서경에서 나라 이름을 "대위", 연호를 "천개", 군대를 "천견충의군"이라 하고 난을 일으켰다. 김부식이 이끄는 관군이 1136년 2월 서경을 함락했다. 이후 개경 문벌 귀족의 권력이 더 강해지고 서경의 지위는 낮아졌다. 신채호는 이 사건을 자주적 낭가 사상과 사대적 유가 사상의 대결로 보고 "조선 역사상 일천년래 제일대사건"이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