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시대와 천하 통일
오닌의 난에서 오사카 전투까지 — 하극상의 전국 다이묘가 다투던 일본을 노부나가·히데요시·이에야스가 하나로 묶은 150년

오닌의 난에서 오사카 전투까지 — 하극상의 전국 다이묘가 다투던 일본을 노부나가·히데요시·이에야스가 하나로 묶은 150년

| 인물 | 출신 | 근거지 | 이룬 일 | 끝 |
|---|---|---|---|---|
| 오다 노부나가 (1534–1582) | 오와리의 다이묘 | 기후성 → 아즈치성 | 교토 입성, 막부 종결, 나가시노 승리, 라쿠이치·라쿠자 | 혼노지의 변 (1582) |
| 도요토미 히데요시 (1537–1598) | 오와리 농민 출신 노부나가 가신 | 오사카성 → 후시미성 | 야마자키 승리, 간파쿠, 검지·도수령, 1590 통일 | 조선 침략 중 병사 (1598) |
| 도쿠가와 이에야스 (1543–1616) | 미카와의 마쓰다이라 집안 | 오카자키 → 에도성·슨푸 | 세키가하라 승리, 쇼군(1603), 오사카 전투, 무가제법도 | 에도 막부 260여 년 |
쇼군 아시카가 요시마사의 후계 다툼에 유력 슈고 가문들의 다툼이 얽혀 1467년부터 11년 동안 교토에서 오닌의 난이 벌어졌다. 막부의 권위가 무너지고, 하극상 속에 전국 다이묘가 다투는 전국 시대가 열렸다.
가가의 정토진종(잇코종) 문도와 지방 무사가 들고일어나 슈고 도가시 마사치카를 자결하게 했다. 이후 약 90년 동안 문도의 잇키가 가가를 다스렸다.
이세 소즈이(호조 소운)가 이즈의 호리고에 고쇼를 쳐서 아시카가 차차마루를 몰아내고 이즈를 차지했다. 그는 이어 오다와라로 나아가 간토의 강자 고호조 집안의 기초를 닦았다.
포르투갈 사람이 탄 배가 일본 다네가시마에 닿아 처음으로 화승총(조총)을 전했다. 조총은 곧 일본 안에서 대량으로 만들어져 전국 시대의 전쟁과 임진왜란의 모습을 바꾸었다.
예수회 선교사 프란치스코 하비에르가 가고시마에 상륙해 일본에 처음으로 크리스트교를 전했다. 그는 2년 남짓 머물며 히라도·야마구치·교토·분고를 돌았다.
가이의 다케다 신겐과 에치고의 우에스기 겐신이 북시나노의 가와나카지마를 두고 1553년부터 1564년까지 다섯 차례 싸웠다. 가장 치열한 것은 1561년의 제4차 전투였으나 끝내 승부가 나지 않았다.
오와리의 오다 노부나가가 쳐들어온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대군을 오케하자마에서 기습해 요시모토를 죽였다. 노부나가가 이름을 떨치고, 이마가와에 매여 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독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오다 노부나가가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받들고 교토에 들어가 그를 제15대 쇼군으로 세웠다. 노부나가는 쇼군의 이름을 빌려 기나이를 손에 넣고 "천하"를 다스리는 길에 들어섰다.
오다 노부나가가 아자이·아사쿠라 편에 선 히에이산 엔랴쿠지를 불태우고 승려와 주민을 죽였다. 수백 년 동안 교토 정치를 흔든 큰 절의 무력이 꺾였다.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가 오다 노부나가에게 맞서 군사를 일으켰다가 마키시마성에서 항복하고 교토에서 쫓겨났다. 230여 년 이어진 무로마치 막부는 사실상 끝났다.
오다 노부나가가 1573년 무로마치 막부를 끝내고 조총 부대로 통일의 길을 연 뒤, 그 뒤를 이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1590년 전국 시대를 끝내고 일본을 통일했다.
오다 노부나가·도쿠가와 이에야스 연합군이 나가시노성을 에워싼 다케다 가쓰요리의 군대를 시타라가하라에서 조총과 목책으로 크게 무찔렀다. 다케다 집안은 이름난 장수를 여럿 잃고 기울었다.
오다 노부나가가 비와호 가의 아즈치산에 높은 천주(천수)를 올린 아즈치성을 쌓았다. 돌담과 천수를 갖춘 근세 성곽의 시작이자 노부나가 정권의 상징이었다.
오다 노부나가의 중신 아케치 미쓰히데가 반란을 일으켜, 교토 혼노지에 머물던 노부나가를 습격했다. 노부나가는 절에 불을 지르고 자결했고, 맏아들 노부타다도 니조 신고쇼에서 죽었다.
주고쿠에서 급히 돌아온 하시바(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야마자키에서 아케치 미쓰히데를 무찔렀다. 노부나가의 원수를 갚은 히데요시는 오다 가신 가운데 으뜸이 되어 노부나가의 후계자로 나섰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의 논밭을 같은 자로 재어 쌀 수확량(고쿠다카)으로 세금을 매기는 검지를 벌이고, 1588년 도수령(가타나가리)으로 농민의 무기를 거두었다. 무사와 농민의 신분이 갈리는 근세 일본의 바탕이 되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이시야마 혼간지 터에 오사카성을 쌓기 시작했다. 금빛으로 꾸민 천수를 올린 이 성은 도요토미 정권의 근거지이자 천하인의 상징이 되었다.
하시바(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노부나가의 아들 오다 노부카쓰·도쿠가와 이에야스 연합군과 오와리 일대에서 싸웠다. 이에야스가 나가쿠테에서 이겼으나, 노부카쓰가 따로 화의하면서 히데요시가 정치적으로 우위를 굳혔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20만이 넘는다는 대군으로 호조 집안의 오다와라성을 에워싸 항복을 받았다. 이어 도호쿠의 다이묘들도 굴복해, 오닌의 난 뒤 120여 년 만에 일본이 하나의 권력 아래 통일되었다.
1592년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면서 시작되어 1598년까지 이어진 7년 전쟁. 명나라가 원군을 보내 동아시아 국제전으로 번졌다.
1600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이시다 미쓰나리의 서군을 꺾고, 1603년 쇼군이 되어 에도에 막부를 열었다. 에도 막부는 1867년까지 260여 년 이어졌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두 차례(겨울·여름)에 걸쳐 오사카성을 쳐서 도요토미 집안을 없앴다. 전국 시대 이래의 큰 전쟁이 끝나 "겐나 엔부(무기를 거둔 평화)"라 불린다.
에도 막부는 쇼군의 막부와 다이묘의 번이 땅과 백성을 나눠 다스리는 막번 체제를 짜고, 무가제법도(1615)와 산킨코타이(1635)로 다이묘를 묶었다.

가이(오늘 야마나시현)의 전국 다이묘. 이름은 하루노부. 시나노를 차지하고 우에스기 겐신과 가와나카지마에서 다투었으며, 1572년 서쪽으로 진군해 도쿠가와 군을 꺾었으나 진중에서 병으로 죽었다
무로마치 막부의 제15대이자 마지막 쇼군(재위 1568–1588). 오다 노부나가의 도움으로 쇼군이 되었으나 그와 맞서다 1573년 교토에서 쫓겨났다
나바라 출신의 가톨릭 선교사. 예수회를 함께 세웠고, 포르투갈 왕의 부탁으로 인도·동남아시아에서 선교한 뒤 1549년 가고시마에 와 일본에 처음으로 크리스트교를 전했다
에치고(오늘 니가타현)의 전국 다이묘. 나가오 가게토라로 태어나 1561년 간토 간레이 우에스기 집안을 이었다. 가와나카지마에서 다케다 신겐과 다섯 차례 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