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582년 – 1598년 (도수령 1588년 8월 29일)

태합 검지와 도수령

다른 이름: 태합 검지, 다이코 겐치, 도수령, 가타나가리, 칼사냥, 병농 분리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의 논밭을 같은 자로 재어 쌀 수확량(고쿠다카)으로 세금을 매기는 검지를 벌이고, 1588년 도수령(가타나가리)으로 농민의 무기를 거두었다. 무사와 농민의 신분이 갈리는 근세 일본의 바탕이 되었다.

검지 기준 자 (복제) — 양 끝의 X 표 사이가 1척, 이시다 미쓰나리의 화압이 있다, 나고야 히데요시·기요마사 기념관
검지 기준 자 (복제) — 양 끝의 X 표 사이가 1척, 이시다 미쓰나리의 화압이 있다, 나고야 히데요시·기요마사 기념관

KKPCW · CC BY-SA 4.0 · 원본

히데요시는 1582년 야마시로를 시작으로 차지한 땅마다 검지를 벌였다(태합 검지). 길이·넓이 단위와 되(교마스)를 통일하고, 논밭 한 필지마다 등급과 수확량을 매겨 실제 경작자 한 사람을 장부에 올렸다(일지일작인). 장원 시대부터 한 땅에 여러 권리가 겹치던 관계가 정리되고, 다이묘의 영지와 군역도 쌀의 석(고쿠) 수로 셈하게 되었다.

1588년 8월 29일에는 도수령을 내려 농민이 칼·활·창·조총을 갖는 것을 금하고 거두어들였다. 거둔 무기는 교토 호코지 대불을 짓는 데 못과 꺾쇠로 쓴다는 명분이었으나, 잇키를 막고 농민을 농사에 묶어 두려는 것이었다. 1591년에는 무사가 농민·상인이 되거나 농민이 장사에 나서는 것을 막는 신분 통제령이 이어졌다. 이렇게 무사와 농민을 가르는 병농 분리가 에도 시대 신분 질서의 바탕이 되었다.

지도에서 보기

1582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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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
일본
관련 장소
헤이안쿄 (평안경)

관련 인물

  • 도요토미 히데요시1537년 – 1598년

    창제자 · 일본을 통일하고 조선 침략을 일으켰다

  • 이시다 미쓰나리1560년 – 1600년

    참여자 · 도요토미 정권의 5부교 가운데 한 사람. 검지와 임진왜란의 병참을 맡은 행정가였고, 히데요시가 죽은 뒤 서군을 모아 세키가하라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싸웠다가 져서 처형되었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582년 야마자키 전투
이후 사건
1583년 오사카성 축성

이 사건이 든 테마

  • 전국 시대와 천하 통일1467년 – 1615년

    오닌의 난에서 오사카 전투까지 — 하극상의 전국 다이묘가 다투던 일본을 노부나가·히데요시·이에야스가 하나로 묶은 15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