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분쟁1582년 7월 2일

야마자키 전투

다른 이름: 덴노잔 전투, 야마자키 합전

주고쿠에서 급히 돌아온 하시바(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야마자키에서 아케치 미쓰히데를 무찔렀다. 노부나가의 원수를 갚은 히데요시는 오다 가신 가운데 으뜸이 되어 노부나가의 후계자로 나섰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상 — 가노 미쓰노부, 1601년 무렵, 교토 고다이지 소장
도요토미 히데요시 상 — 가노 미쓰노부, 1601년 무렵, 교토 고다이지 소장

Kanō Mitsunobu · Public domain · 원본

빗추 다카마쓰성을 물에 잠기게 해 에워싸고 있던 히데요시는 노부나가의 죽음을 듣자 곧 모리 집안과 화의를 맺고, 군대를 이끌고 200km 남짓을 열흘 안팎에 되돌아왔다("주고쿠 대회군"). 노부나가의 셋째 아들 노부타카와 니와 나가히데 등이 합류했다.

1582년 7월 2일 양군은 덴노잔과 요도강 사이의 좁은 땅 야마자키에서 맞붙었다. 병력이 크게 모자랐던 미쓰히데는 하루 만에 무너져 쇼류지성으로 물러났다가 밤에 빠져나가던 중 오구루스에서 농민의 공격을 받아 죽었다. 이 싸움에서 나온 "덴노잔"은 승부를 가르는 고비를 뜻하는 말이 되었다. 히데요시는 기요스 회의에서 주도권을 잡고, 1583년 시즈가타케 전투에서 시바타 가쓰이에를 꺾었다.

지도에서 보기

1582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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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
일본
관련 장소
야마자키

관련 인물

  • 도요토미 히데요시1537년 – 1598년

    지휘관 · 일본을 통일하고 조선 침략을 일으켰다

  • 아케치 미쓰히데1582년

    지휘관 · 오다 노부나가의 중신. 단바를 평정하고 사카모토성·후쿠치야마성을 맡았으나, 1582년 혼노지의 변으로 노부나가를 죽이고 열하루 만에 야마자키 전투에서 졌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582년 혼노지의 변
이후 사건
1582년 태합 검지와 도수령

이 사건이 든 테마

  • 전국 시대와 천하 통일1467년 – 1615년

    오닌의 난에서 오사카 전투까지 — 하극상의 전국 다이묘가 다투던 일본을 노부나가·히데요시·이에야스가 하나로 묶은 15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