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계 올림픽
고대 올림피아 제전에서 2024년 파리까지 — 쿠베르탱이 되살린 근대 올림픽이 전쟁·보이콧·분단을 지나온 한 세기

고대 올림피아 제전에서 2024년 파리까지 — 쿠베르탱이 되살린 근대 올림픽이 전쟁·보이콧·분단을 지나온 한 세기

| 대회 | 개최지 | 특징 |
|---|---|---|
| 1896 제1회 | 아테네 | 근대 올림픽의 시작, 첫 마라톤 |
| 1936 제11회 | 베를린 | 나치 선전, 첫 성화 봉송, 오언스·손기정 |
| 1948 제14회 | 런던 | 전후 첫 대회, 한국이 KOREA로 첫 참가 |
| 1964 제18회 | 도쿄 | 아시아 첫 올림픽, 위성 생중계 |
| 1968 제19회 | 멕시코시티 | 시상대의 검은 주먹 경례 |
| 1972 제20회 | 뮌헨 | 이스라엘 선수단 인질 사건 |
| 1980 제22회 | 모스크바 | 서방 60여 나라 보이콧 (아프가니스탄 침공) |
| 1984 제23회 | 로스앤젤레스 | 공산권 보이콧, 상업 올림픽의 시작 |
| 1988 제24회 | 서울 | 동서 진영이 다시 모임, 종합 4위 |
| 1992 제25회 | 바르셀로나 | 냉전 뒤 첫 대회, 황영조 마라톤 우승 |
| 2000 제27회 | 시드니 | 남북 공동 입장, 태권도 정식 종목 |
| 2020 제32회 | 도쿄 | 코로나19로 1년 연기, 무관중 |
기원전 8세기 그리스 곳곳에 도시 국가(폴리스)가 섰다. 따로 다스리던 폴리스들은 올림피아의 제우스 제전에 함께 모이며 같은 그리스인이라는 의식을 나누었다.
크리스트교를 국교로 삼은 테오도시우스 1세가 이교 제사를 금지한 뒤, 천 년 넘게 이어진 올림피아 제전이 393년 무렵을 끝으로 사라졌다.
쿠베르탱의 제안으로 파리 소르본에서 열린 국제 회의가 고대 올림픽을 되살리기로 하고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를 세웠다. 첫 대회는 1896년 아테네로 정했다.
제1회 근대 올림픽이 아테네 파나티나이코 경기장에서 열렸다. 14개 나라의 남자 선수 241명이 9개 종목에서 겨루었고, 마라톤은 그리스의 스피리돈 루이스가 우승했다.
제2회 올림픽은 파리 만국 박람회의 부대 행사로 다섯 달 넘게 흩어져 열렸다. 여자 선수가 처음 참가해, 영국의 테니스 선수 샬럿 쿠퍼가 첫 여성 올림픽 우승자가 되었다.
유럽 밖에서 처음 열린 올림픽. 루이지애나 매입 기념 박람회와 함께 열렸고, 먼 길 탓에 선수 대부분이 미국인이었다. 금·은·동메달을 처음 주었다.
로마가 베수비오 화산 분화로 개최를 포기하자 런던이 대신 맡았다. 선수단이 나라별로 입장했고, 마라톤 거리 42.195km가 이 대회에서 비롯했다.
28개 나라가 참가한 스톡홀름 대회는 전자 계시와 사진 판정을 처음 써 근대 올림픽의 틀을 갖추었다. 일본이 처음 참가했다. 다음 1916년 베를린 대회는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열리지 못했다.
제1차 세계 대전으로 큰 피해를 입은 벨기에에서 열린 전후 첫 대회. 오륜기가 처음 휘날리고 선수 선서와 비둘기 날리기가 시작되었다. 패전국은 초청받지 못했다.
쿠베르탱이 위원장으로서 치른 마지막 대회. 44개 나라가 참가했고, 처음으로 선수촌을 두었다. 핀란드의 파보 누르미가 금메달 다섯 개를 땄다.
경기장 탑에 올림픽 성화가 처음 타올랐고, 여자 육상 경기가 처음 열렸다. 독일이 16년 만에 돌아왔고, 일본은 세단뛰기에서 아시아의 첫 금메달을 땄다.
대공황과 먼 거리 탓에 37개 나라 1,300여 명만 참가했다. 처음으로 남자 선수촌을 짓고, 시상대에 올라 국기를 올리는 시상식을 시작했다.
나치 독일이 체제를 선전하는 무대로 삼은 대회. 성화 봉송이 처음 열렸다. 미국의 제시 오언스가 금메달 네 개를 땄고, 손기정이 일본 대표로 마라톤을 우승했다.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의 사진을 실으며 동아일보와 조선중앙일보가 가슴의 일장기를 지웠다. 총독부는 동아일보를 무기 정간하고 기자들을 잡아들였다.
제2차 세계 대전으로 두 번 거른 뒤 12년 만에 열린 "내핍 올림픽". 정부 수립을 앞둔 한국이 처음으로 KOREA라는 이름과 태극기를 앞세워 참가해 동메달 두 개를 땄다.
소련이 처음 참가해 냉전의 메달 경쟁이 시작되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에밀 자토페크가 5,000m·10,000m·마라톤을 휩쓸었다. 6·25 전쟁 중이던 한국도 선수단을 보냈다.
남반구에서 처음 열린 올림픽. 헝가리 혁명과 수에즈 위기에 항의한 나라들이 불참했다. 한국은 복싱의 송순천이 첫 은메달을 땄다.
에티오피아의 아베베 비킬라가 맨발로 마라톤을 우승해 아프리카 흑인 선수의 첫 금메달을 땄다. 대회 뒤 같은 곳에서 첫 패럴림픽이 열렸다.
아시아에서 처음 열린 하계 올림픽. 개막에 맞춰 신칸센이 개통되었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처음 열린 올림픽. 시상대에서 미국의 흑인 선수 토미 스미스와 존 카를로스가 검은 장갑을 낀 주먹을 들어 인종 차별에 항의했다.
서독이 베를린 올림픽의 그늘을 씻고 "명랑한 대회"를 내세워 연 올림픽. 그러나 대회 중 팔레스타인 무장 조직 "검은 9월단"이 이스라엘 선수단을 습격해 인질 11명이 모두 숨졌다.
팔레스타인 무장 조직 "검은 9월단"이 뮌헨 올림픽 선수촌에서 이스라엘 선수단을 인질로 잡았다. 서독 경찰의 구출 작전이 실패해 인질 11명이 모두 숨졌다.
아프리카 20여 나라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 차별과 얽힌 문제로 불참했다. 레슬링의 양정모가 광복 뒤 한국의 첫 올림픽 금메달을 땄다.
사회주의 나라에서 처음 열린 올림픽.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해 미국이 이끈 60여 나라가 불참했고, 한국·일본·서독·중국도 가지 않았다.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 15개 나라가 불참했다. 정부 돈 없이 기업 후원과 중계권으로 흑자를 내 상업 올림픽의 시대를 열었다. 한국은 금메달 6개로 종합 10위에 올랐다.
제24회 하계 올림픽이 서울에서 열렸다. 냉전 이후 동서 진영이 함께한 대회였다.
냉전이 끝난 뒤 처음 보이콧 없이 열린 대회. 통일 독일과 옛 소련의 독립 국가 연합 팀이 나왔다. 황영조가 마라톤에서 우승해 손기정 이후 56년 만에 한국인이 올림픽 마라톤을 제패했다.
근대 올림픽 100주년 대회. IOC의 197개 회원국이 모두 참가했다. 대회 중 센테니얼 올림픽 공원에서 폭탄이 터져 2명이 숨졌다.
개막식에서 남북한 선수단이 한반도기를 앞세워 분단 뒤 처음으로 함께 입장했다. 한국에서 비롯한 태권도가 처음 정식 종목이 되었다.
올림픽이 108년 만에 첫 대회의 도시로 돌아왔다. 포환던지기는 고대 올림피아 경기장에서, 마라톤은 마라톤에서 파나티나이코 경기장까지 옛 길을 따라 열렸다.
중국이 처음 연 올림픽. 2008년 8월 8일 오후 8시에 개막했고, 중국은 금메달 수 1위에 올랐다. 펠프스가 금메달 8개, 볼트가 100m·200m 세계 기록을 세웠다.
런던이 세계에서 처음 하계 올림픽을 세 번 연 도시가 되었다. 처음으로 모든 참가국이 여자 선수를 보냈다. 한국은 금메달 13개로 종합 5위에 올랐다.
남아메리카에서 처음 열린 올림픽. 나라를 잃은 선수들로 꾸린 난민 선수단이 처음 출전했고, 러시아의 국가 주도 도핑이 드러나 큰 논란이 되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올림픽 사상 처음 1년 미루어져 2021년에 열렸다. 이름은 "도쿄 2020"을 그대로 썼고, 대부분의 경기를 관중 없이 치렀다.
파리가 100년 만에 세 번째 올림픽을 열었다. 개막식을 처음으로 경기장 밖 센강에서 배를 타고 치렀고, 처음으로 남녀 선수 수를 똑같이 맞추었다.

프랑스의 교육자. 1894년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를 세워 근대 올림픽을 되살렸고, 1896년부터 1925년까지 IOC 위원장을 지냈다

일제 강점기의 마라톤 선수.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일본 대표로 우승했으나 시상대에서 고개를 숙였고, 그 사진이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이어졌다


미국의 육상 선수.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100m·200m·멀리뛰기·400m 계주의 금메달 네 개를 땄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서 나치의 인종주의를 무색하게 한 상징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