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1992년 7월 25일 – 8월 9일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다른 이름: 제25회 올림픽

냉전이 끝난 뒤 처음 보이콧 없이 열린 대회. 통일 독일과 옛 소련의 독립 국가 연합 팀이 나왔다. 황영조가 마라톤에서 우승해 손기정 이후 56년 만에 한국인이 올림픽 마라톤을 제패했다.

몬주익 올림픽 경기장 앞의 황영조 기념 조형물 — 바르셀로나
몬주익 올림픽 경기장 앞의 황영조 기념 조형물 — 바르셀로나

Enric · CC BY-SA 4.0 · 원본

1992년 7월 25일부터 8월 9일까지 169개 나라에서 선수 9,300여 명이 참가했다. 1972년 뒤 처음으로 큰 보이콧이 없었다. 1990년 통일한 독일이 한 팀으로 나왔고, 1991년 해체된 소련의 12개 공화국은 "독립 국가 연합(EUN)"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출전했으며, 발트 3국은 따로 참가했다. 인종 차별 정책을 버린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32년 만에 돌아왔고, 유엔 제재를 받은 유고슬라비아 선수들은 개인 자격으로 출전했다. 미국은 처음으로 미국 프로 농구(NBA) 선수들로 "드림팀"을 꾸렸다. 개막식에서는 장애인 양궁 선수가 불화살을 쏘아 성화대에 불을 붙였다.

마지막 날인 8월 9일 황영조가 몬주익 언덕의 오르막에서 일본의 모리시타 고이치를 따돌리고 2시간 13분 23초로 마라톤을 우승했다. 손기정이 베를린에서 우승한 지 꼭 56년 되는 날이었고, 손기정이 관중석에서 지켜보았다. 한국은 배드민턴이 정식 종목이 된 이 대회에서 금메달 12개로 종합 7위에 올랐다.

지도에서 보기

1992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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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
에스파냐 · 개최국

관련 인물

  • 황영조1970년

    참여자 · 대한민국의 마라톤 선수.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해, 손기정 이후 56년 만에 한국인으로서 올림픽 마라톤을 제패했다

  • 손기정1912년 – 2002년

    관련자 · 일제 강점기의 마라톤 선수.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일본 대표로 우승했으나 시상대에서 고개를 숙였고, 그 사진이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이어졌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982년 1982 에스파냐 월드컵

이 사건이 든 테마

  • 하계 올림픽기원전 776년 – 2024년

    고대 올림피아 제전에서 2024년 파리까지 — 쿠베르탱이 되살린 근대 올림픽이 전쟁·보이콧·분단을 지나온 한 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