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전쟁
1850년 타협에서 링컨 암살까지 — 노예제를 두고 갈라선 미국이 4년의 내전 끝에 연방을 지키고 노예제를 없앴다

Alexander Gardner · Public domain · 원본
1850년 타협에서 링컨 암살까지 — 노예제를 두고 갈라선 미국이 4년의 내전 끝에 연방을 지키고 노예제를 없앴다

Alexander Gardner · Public domain · 원본
멕시코 전쟁으로 얻은 땅에 노예제를 둘지를 두고 남북이 맞서자, 의회가 캘리포니아를 자유주로 받는 대신 더 엄한 도망 노예법을 만드는 등 다섯 법으로 타협했다.
해리엇 비처 스토가 노예제의 참상을 그린 소설을 책으로 펴냈다. 첫해 미국에서만 30만 부쯤 팔려 북부의 노예제 반대 여론을 크게 키웠다.
캔자스·네브래스카 준주의 노예제를 주민이 정하게 하여 미주리 타협의 경계선을 없앴다. 캔자스에서 유혈 충돌이 벌어졌고 노예제 확대에 반대하는 공화당이 생겼다.
연방 대법원이 흑인은 미국 시민이 될 수 없고, 의회는 준주에서 노예제를 금지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노예제를 둘러싼 타협의 길이 더 좁아졌다.
노예제 폐지론자 존 브라운이 노예 반란을 일으키려고 하퍼스페리의 연방 무기고를 점령했으나, 해병대에게 진압되어 붙잡혔고 그해 12월 처형되었다.
민주당이 남북으로 갈라진 가운데 노예제 확대에 반대한 공화당의 에이브러햄 링컨이 북부 주의 선거인단을 휩쓸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사우스캐롤라이나를 시작으로 남부 7개 주가 연방을 떠나 1861년 2월 몽고메리에서 아메리카 연합국(남부 연합)을 세우고 제퍼슨 데이비스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노예제와 연방 문제로 갈라선 북부와 남부가 벌인 내전. 링컨이 이끈 북부가 이겨 연방이 유지되고 노예제가 폐지되었다.
남군이 찰스턴 항구의 연방 요새 섬터를 34시간 포격해 항복을 받아 냈다. 링컨이 의용군 7만 5천 명을 부르면서 남북 전쟁이 시작되었다.
리치먼드로 진군하던 북군이 버지니아 매너서스 근처 불런 개울에서 남군에게 패해 워싱턴으로 쫓겨 갔다. 전쟁이 짧게 끝나리라는 기대가 무너졌다.
남군의 철갑함 버지니아호가 북군의 목조 군함들을 쳐부순 다음 날, 북군의 철갑함 모니터호와 맞붙었다. 세계 최초의 철갑함끼리의 싸움으로, 목조 군함의 시대가 끝났음을 알렸다.
테네시강의 피츠버그 랜딩에 진을 친 그랜트의 북군을 남군이 기습했으나, 이튿날 원군을 얻은 북군이 되밀어 냈다. 이틀 만에 2만 3천 명 넘는 사상자가 나왔다.
북부로 쳐들어온 리의 남군을 매클렐런의 북군이 메릴랜드주 샤프스버그에서 막았다. 하루 사상자 약 2만 3천 명으로 미국 역사에서 가장 피비린내 나는 하루였다.
링컨이 반란 중인 남부 연합 지역의 노예를 영원히 자유롭다고 선언했다. 전쟁의 목적에 노예 해방이 더해졌고, 흑인 병사들이 북군에 들어왔다.
리가 두 배가 넘는 후커의 북군을 군대를 나누는 대담한 작전으로 물리쳤다. 그러나 스톤월 잭슨이 아군의 오인 사격에 맞아 숨졌다.
펜실베이니아로 쳐들어온 리의 남군이 미드의 북군에게 사흘 동안 맞섰으나 피킷의 돌격이 무너지며 졌다. 남북 전쟁의 흐름이 바뀐 가장 큰 싸움이다.
그랜트의 북군이 미시시피강의 요새 도시 빅스버그를 47일 동안 포위해 항복을 받았다. 북군이 미시시피강을 장악해 남부 연합은 동서로 갈라졌다.
게티즈버그 국립묘지 봉헌식에서 링컨이 2분 남짓한 짧은 연설로 전쟁의 뜻을 자유의 새로운 탄생과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를 지키는 것으로 밝혔다.
셔먼의 북군이 남부의 철도 중심지 애틀랜타를 빼앗은 뒤 조지아를 가로질러 대서양의 서배너까지 진군하며 철도와 농장, 물자를 파괴했다.
의회가 노예제와 강제 노역을 금지하는 헌법 수정안을 통과시켰고, 1865년 12월 각 주의 비준으로 발효되었다. 미국 전역에서 노예제가 끝났다.
리치먼드를 잃고 쫓기던 리가 애퍼매톡스 코트하우스에서 그랜트에게 북버지니아군을 넘기며 항복했다. 남북 전쟁이 사실상 끝났다.
리가 항복한 닷새 뒤 워싱턴의 포드 극장에서 남부 지지자 존 윌크스 부스가 링컨을 쏘았다. 링컨은 이튿날 아침 숨졌고 부통령 앤드루 존슨이 대통령이 되었다.